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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 7. 2, 황해 사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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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9. 6. 28, 경기 고양 |
국적 | 한국 |
요약 영화감독. 1947년 이규환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해 1956년 <교차로>로 데뷔했다. 1950년대 한국영화의 미숙함을 극복하기 위한 형식의 시도로 몽타주를 실험했고, 이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오발탄>·<김약국의 딸들>·<잉여인간>·<카인의 후예> 등이다.
영화감독. 1925년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47년부터 이규환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영화수업을 거친 후 〈교차로〉로 감독에 데뷔했다(1956). 같은 해 〈유전의 애수〉를 제작했는데, 이 시기에는 전후 한국영화의 테크닉상의 미숙함을 극복하기 위한 형식의 시도로서 몽타주를 실험했다.
이후 〈잃어버린 청춘〉(1957)·〈인생차압〉(1958)·〈구름은 흘러가도〉(1959)·〈오발탄〉(1961) 등의 작품을 통해 비참한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하려 했다. 당시로서는 독보적이었던 그의 영화적 능력과 사회비판적 주제는 높이 평가받았고, 어떤 경우에는 권력의 탄압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낌없이 주련다〉(1962)·〈김약국의 딸들〉(1963)·〈잉여인간〉(1964)·〈카인의 후예〉(1968)·〈분례기〉(1971) 등 성숙기에 접어든 196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형식과 주제의 일치가 더욱 무르익었음을 볼 수 있다. 1973년 유신정부의 영화법 재정과 검열강화, 이후의 전반적인 국내영화산업의 쇠퇴 등으로 그의 작품활동은 위축되었으나 이 시기에도 〈장마〉(1979)·〈사람의 아들〉(1980) 등의 수작을 만들었다. 1963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재직했다. 〈세계영화감독론〉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다수의 소논문도 발표했다.
수상 경력으로는 대종상의 '영예로운 감독상' 외에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예술원상, 대종상 등 3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1998년에는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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