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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363.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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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422. 5 |
국적 | 중국, 남조 송(宋) |
요약
남조 송나라 초대 황제다. 3년간의 재위기간 중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고, 호족의 세력을 억제시켰으며, 국가기관을 간소화·정예화했다. 학교를 세우고, 강남의 농업생산을 발전시켜 이후 ‘원가의 치’의 기초를 놓았다.
젊었을 때 동진 경려의 북부병에 들어간 유유는 손은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하비태수가 되었다. 형주도독 환현이 권력탈취를 위해 군사를 일으켜 건강에 이르렀을 때, 북부병을 이끌고 환현을 격퇴했다. 이 공으로 408년 양주자사 녹상서사에 임명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416년 후진 토벌을 위해 출병하여, 그 다음해 뤄양을 장악했고, 대장 왕진악을 장안으로 보내어 후진을 항복시켰다. 420년 동진 최후의 황제인 공제에게 제위를 이양 받고 국호를 송이라고 했다.
아명은 기노(寄奴). 자는 덕여(德與). 시호는 무제(武帝). 원적은 팽성(彭城:지금의 장쑤 성[江蘇省] 쉬저우[徐州])인데 후에 경구(京口:지금의 장쑤 성 전장[鎭江])로 옮겨와 살았다. 젊었을 때 동진 경려(勁旅)의 북부병(北府兵)에 들어가 손은(孫恩)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하비태수(下邳太守)가 되었다.
형주도독(荊州都督) 환현(桓玄)이 권력탈취를 위해 군사를 일으켜 건강(建康:지금의 장쑤 성 난징[南京])에까지 이르렀을 때, 환수참군(桓修參軍)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북부병을 이끌고 환현을 격퇴했으며, 난을 평정한 공으로 408년 양주자사녹상서사(揚州刺史錄尙書事)에 임명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다음해 군대를 이끌고 북벌에 나서 남연을 멸했을 뿐 아니라 노순(盧循)·서도복(徐道覆)의 난을 진압하고 파촉(巴蜀)지역을 수복했다. 416년 후진(後秦)을 토벌하기 위해 출병하여 그 다음해 뤄양[洛陽]을 장악했고, 대장 왕진악(王鎭惡)을 장안(長安)으로 보내어 후진을 항복시켰다. 그러나 승리 후 왕진악은 곧 건강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장안을 또다시 잃었다. 다만 동관 동쪽에서 청주(靑州)까지는 이미 동진의 지배 아래 있었으므로 강회(江淮) 유역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420년 유유는 동진 최후의 황제인 공제에게 제위를 이양받고 국호를 송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화북을 통일한 북위와 함께 남북조시대가 시작된다. 3년간의 재위기간(420~422)중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고 호족의 세력을 억제시켰다. 경계에 의해 토지를 나누고 북방에 사는 이민족들을 편호(編戶)로 만들어 세역을 부과했다. 국가기관을 간소화·정예화하고 형벌을 경감시켰으며, 황제가 직접 송사(訟事)를 들었다. 학교를 세우고 책(策:과거문체의 일종)으로써 각 주(州)·군(郡)의 수재(秀才)를 뽑았다. 또한 강남의 농업생산을 발전시켜 이후 '원가(元嘉)의 치(治)'의 기초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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