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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98(선조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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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78(숙종 4)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풍산. 자는 장경(長卿), 호는 졸재(拙齋). 할아버지는 영의정 성룡(成龍)이고, 아버지는 장령 여(袽)이다. 정경세(鄭經世)·유진(柳袗)의 문인이다.
황간현감·진암현감 등을 지냈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이홍조(李弘祚)가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했다. 그는 병파(屛派)의 중심이 된 유성룡의 이생기설(理生氣說)을 계승함으로써 이황(李滉)의 학설을 따랐다. 즉 이(理)가 기(氣)를 낳고, 기는 형체를 이룬다고 보아 무한 영원한 이의 현현(顯顯)이 현실의 세계이고, 기는 이 현실세계 형성의 재료로서 있게 될 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이(李珥)의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은 불교의 이론과 근사하다고 비판했다(→ 주리론).
사단칠정설에 대해서도 사단·칠정의 이발(理發)·기발(氣發)을 강조하면서 이이가 사단을 칠정에 복속시켜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로 설명했던 것을 반박했다. 예설(禮說)에 있어서는 서인 송시열(宋時烈)의 기년설(碁年說)을 반대하고 3년설을 주장했다. 상수·천문·지리·예악(禮樂)·율력(律曆)·의학·복서 등 여러 분야에 능통했다. 저서로 〈졸재집 拙齋集〉이 있다. 안동 화천서원(花川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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