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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0(고종 27), 경북 안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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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5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당진·예산 등지에서 시위운동에 참가했다. 그뒤 중국으로 건너가 1921년 항일무력투쟁을 목표로 하는 의열단에 가입하여 투쟁자금모집을 담당했다.
1923년 2월 권정필(權正弼)·남영득(南英得)·유병하(柳丙夏) 등과 함께 의열단의 제2차 암살파괴계획인 조선총독부·조선은행·경성우체국·경성전기회사 등을 파괴하고,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비롯한 침략의 원흉들을 암살하기 위한 거사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 내자동의 부호 이인희(李麟熙)의 집을 찾아가 5,000원을 요구하는 등 3차례에 걸쳐 자금을 내놓을 것을 강요하다, 3월 3일 잠복중이던 일본경찰에게 붙잡혔다. 의열단 암살파괴계획에 관련되어 붙잡힌 김시현(金始顯)·황옥 등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1924년 8월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1931년 시국비방죄로 다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8·15해방 후 이승만이 독재권력을 휘두르자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시현과 상의, 이승만을 제거하고 통일지향적 정부를 수립하기로 했다. 1952년 6월 25일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열린 6·25기념식에서 중절모 속에 권총을 감추고 들어가 귀빈석에서 연단으로 뛰어나가며 이승만을 저격했으나 권총이 불발되어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이듬해 김시현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하다가 4·19의거가 일어나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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