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전근대사회에서 사회적·경제적·군사적 요인 등으로 인해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무리.
특히 중세사회에서는 토지에서 떨어져나와 유랑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국가에서 일정한 목적 아래 주거지를 옮기게 했던 사민과는 구별된다. 유민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농민층의 이탈이 곧 중세국가의 기반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유민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니다가 도적떼가 되거나, 농장 등에 숨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면 사회불안이 야기되고 국가의 재정수입이 감소한다. 따라서 중세국가는 이들에 대한 안집(安集)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유민발생의 원인은 다양한데, 자연적 요인으로 가장 큰 것은 흉년에 따른 기근이다. 그밖에 황충(黃蟲)·한발·홍수 등의 자연재해도 그 발생요인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전근대사회에서 항상 발생했기 때문에 한 지역에 먹을 것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이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고대에서는 식량을 흉년지역으로 옮기거나 민을 이동시켰다. 하지만 이 경우 그 지역의 생산기반이 완전히 파괴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중세부터는 그 대책이 비황(備荒)·진대(賑貸)·진휼(賑恤) 등의 방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유민발생도 적지 않았다. 국가나 지배층에 의한 농민수탈 가중, 부세 수취구조의 모순, 대토지소유 발달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 때문이었다. 전자는 조세 이외에 역역의 가중이 그 요인이 되었으며, 지배층의 자의적 수탈도 이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조세 수취는 국가에서 군현 단위로 일정하게 책정했다. 책정된 수취액은 재해 등의 요인이 없는 한, 변화가 없었으므로 유민이 발생하는 경우에 그들이 짊어졌던 조세나 역 등을 타인이 부담해야 했다. 이것이 유민을 확대시키는 악순환을 유발했다. 이에 국가는 조세를 감면하거나 탐관오리에 대한 감찰, 유민에 대한 법처벌의 강화 등으로 대처하려 했다. 그러나 유민문제는 전근대사회에 항상 존재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사회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