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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75(숙종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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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56(영조 32)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묵죽화가.
본관은 진주. 자는 자고·성유, 호는 수운·가산. 묵죽화를 잘 그렸다는 진동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사간 성삼이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 후기의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이다. 동시대 인물인 신광수(申光洙)가 〈석북집 石北集〉에서 그의 묵죽화에 대하여 "당세의 짙푸른 수운의 대나무는 속세를 벗어났으며 그 기세가 높다"라고 했다.
그는 이정의 묵죽화풍을 답습했다고 한다. 즉 먹의 대조를 통해 대나무간의 거리를 나타내는 수법과 통죽을 그리는 데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대나무 밑의 토파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정보다 간단하게 선으로만 그리거나 음영을 조금 넣고 끝이 뾰족한 수직점을 찍었다. 그러나 대나무를 묘사하는 필치와 먹의 농도조절에서는 김정희(金正喜)가 지적했듯이 이정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설죽 雪竹〉(간송미술관)·〈설죽도 雪竹圖〉(국립중앙박물관)·〈신죽도 新竹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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