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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9. 6. 10, 미국 앨라배마 버밍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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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21. 12. 26, 미국 매사추세츠 벌링턴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생물학자·저술가. 개미에 관한 연구를 통해 사회생물학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곤충 연구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함께, 학문 분야 사이의 협업과 연합을 의미하는 '통섭' 개념을 제시하여 학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퓰리처 상을 2번 수상한 유명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정의
미국의 생물학자·사회생물학자·저술가. 생물학과 사회학의 관계를 밝히는 데 기여했으며, 개미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또한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동물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유전적 기초를 연구하는 사회생물학을 최초로 주창했다.
초기 생애
윌슨은 1929년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 관찰을 즐겼던 그가 일곱 살 되었을 때 두 가지 불행이 그에게 다가왔는데, 하나는 부모의 이혼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 눈의 실명이었다. 어린 나이였던 윌슨은 낚시를 하다가 오른쪽 눈동자를 찔린 후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 결국 시력을 잃었고, 이후 왼쪽 눈으로만 사물을 볼 수 있었다.
윌슨은 정부 소속 회계사로서 도로관리를 맡은 아버지를 따라 미국 남동부 도시 곳곳을 옮겨다니며 성장기를 보냈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윌슨은 다양한 생물 가운데서도 특히 곤충에 흥미를 느꼈으며, 그중에서도 나비나 개미 같은 작은 곤충에 집중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졸업반 무렵 개미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20세가 되기 전에 앨라배마 주의 모든 개미에 대한 관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개미 연구
윌슨은 초기에는 앨라배마대학교(1949 이학사, 1950 이학석사)에서 개미에 관한 연구에 전념했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1955년 개미의 한 속인 라시우스속에 관한 철저한 분류학적 분석을 완결했다. W. L. 브라운과 공동으로 '형질전이'의 개념을 확립시켰는데, 이는 밀접하게 관련된 2종(種)의 개체군이 처음으로 서로 접촉한 후에 경쟁과 잡종형성의 기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진화적 분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1956년 하버드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된 후 개미들이 페로몬으로 알려진 화학물질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을 밝혔으며, 그외에도 많은 발견을 했다. 남태평양에 서식하는 개미의 분류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종의 분화와 분산이 생물 개체군이 확장될 때 만나는 다양한 서식지에 관련되어 있는 분류군 주기에 관한 개념을 공식화했다.
1960년대에는 생태학자인 로버트 맥아더와 함께 이른바 섬 지리생물학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는데, 이 이론은 일정한 지역 안에서 환경적인 요인들이 각 생물의 숫자와 분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는 플로리다 남부 연안의 홍수림 섬에서 여러 차례에 걸친 실험을 통해 이 이론을 증명했으며, 이 연구를 통해 생태보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생물학 주창
윌슨은 하버드대학교에서 동물학교수(1964~76)를 거쳐 1976년 프랑크 B. 베어드주니어좌 과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972년에는 비교동물학 박물관의 곤충학 관장으로 임명되었고 1973년 진화연구학회 회장이 되었다. 1971년 그는 개미와 그밖의 다른 사회적 곤충들에 대한 결정적인 연구를 다룬 〈곤충 사회(The Insect Societies)〉를 출판했다. 이 책은 여러 종류의 사진을 싣고 있으며 수많은 종들의 사회적 행동 유형, 집단동태, 생태 등을 다루고 있다.
그의 2번째 중요한 저작인 〈사회생물학:새로운 합성 (Sociobiology:The New Synthesis)〉(1975)에서는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제시했다. 이 책은 동물사회가 기초하고 있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원리들이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는데, 이것은 몇몇 과학자들과 이러한 생각이 정치적인 자극을 유발할 것이라고 간주한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실제로 윌슨은 인간 행동 중에서 10% 정도만이 유전적으로 결정되고 나머지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입장을 고수했다.
퓰리처 상 수상
197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1978)에서는 인간의 공격성, 성적 특질, 윤리관 등과 사회생물학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조사·연구했다. 윌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이론 중의 하나는 이타주의조차도 유전적인 면이 기초가 되어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진화해왔을 것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연선택은 한 개체의 생식 기회를 증가시키는 육체적·행동적 특징들만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생각되어왔다.
따라서 한 생물이 직계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때와 같은 이타적 행위는 자연선택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윌슨은 많은 이타적 행위들이 밀접하게 관련된 개체, 즉 희생되는 생물과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개체들에 대해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자연선택과 일치한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계속 고수했다. 윌슨은 진화의 전략이 개체보존이 아닌 유전자 보존에 있음을 주목했던 것이다. 윌슨은 1990년 독일의 곤충학자 베르트 횔도블러(Bert Hölldobler)와 공저로 동물학 교과서인 <개미(Ants)>를 출간하여 1991년 두번째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통섭' 개념의 제시
자서전인 〈자연주의자(Naturalist)〉(1994)를 통해 학자로서 자신의 한평생을 자세히 소개한 윌슨은 자신의 탐구심이 생명애(生命愛)에서 나온 것이며,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윌슨은 어린 시절에 이미 자연에 대한 사랑에 눈을 떴다고 고백하며, 항상 변하는 세상에서 항구적인 것은 자연뿐이라고 생각했다.
윌슨은 1998년 <통섭, 지식의 통합(Consilience: Unity of Knowledge)>을 출간하여, 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학제간 연구를 통해 서로 다른 학문 영역 사이에서 지식을 종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문화와 의식이 인간 본성의 산물이라고 설명하면서, 인간의 본성은 유전적 패턴이 누적된 규칙이라고 정의했다.
말년
1996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은퇴한 윌슨은 명예교수로 남아 곤충학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윌슨생물다양성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윌슨은 1955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아이린 켈리와 결혼했으며, 은퇴 후에는 매사추세츠 주 렉싱턴 자택에서 머물렀다. 2021년 12월 26일 매사추세츠 벌링턴에서 9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평가
윌슨은 평생 30여 권의 저술을 발표했으며, 1959년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의 회원, 1969년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76년 미국 국립과학훈장을 수상했다. 1976년, 1991년 두 번에 걸쳐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92년 펴낸 〈생명의 다양성(The Diversity of Life)〉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1990년대 과학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됨에 따라 1995년 생태계 보존과 환경보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오두본 메달을 받았다. 2010년에는 강변에서 경쟁하는 개미 집단을 묘사한 소설 작품인 <개미둑: 소설(Anthill: A Novel)>을 발표하여 시카고트리뷴지에서 수여하는 하트랜드 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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