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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12. 2. 16, 미국 뉴햄프셔 파밍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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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5. 11. 22, 워싱턴 D. C.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정치가.
본명은 Jeremiah Jones Colbath.
공화당의 상원의원 겸 부통령(1873~75)을 지냈으며 노예제 반대 운동의 전국적인 지도자였다. 10세 때 계약노동자로 고용되어 농장에서 일하다가 21세에 자유인이 되었으며, 이때 정식으로 이름을 헨리 윌슨으로 바꾸었다.
제화 기술을 배운 뒤 매사추세츠 주 네이틱에서 소규모 제화업을 시작했다. 워싱턴 D. C.를 방문하여, 노예제에 대한 논의들을 듣고 노예 경매를 목격한 후 노예해방 운동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가두연설가로서 명성을 얻어 휘그 당원으로 1840년 매사추세츠 주의회에 진출했고 그뒤 12년 동안 거의 중단 없이 주의원으로 활동했다. 노예제 문제에 대해 휘그당이 취한 이중적인 자세에 실망하여 1848년 자유토지당(Free-Soil Party) 창당에 참여했다. 그후 배타적 성격의 아무것도 모른다당(Know-Nothing Party)에 입당했다가(1854) 몇 년 후에 공화당으로 옮겼다.
연방 상원의원(1855~73)으로 선출되어 남북전쟁(1861~65) 동안 군사문제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전후 남부에 대해 유화정책을 편 앤드루 존슨 대통령에 반대했다. 1868년 부통령후보 지명에서 패배했으나 4년 후에 지명되어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의 2차 임기 동안 부통령을 역임하다가 재임중 심장마비로 순직했다. 윌슨은 남북전쟁과 전후 재건에 관해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미국 노예 세력 흥망사 History of the Rise and Fall of the Slave Power in America〉(3권, 1872~77)의 저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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