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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2. 7. 1, 미국 코네티컷 글래스턴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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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78. 2. 11, 코네티컷 하트퍼드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해군장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앤드루 존슨 대통령 시절에 해군장관을 지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웰스는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법률을 공부했지만 1826년 〈하트퍼드 타임스 Hartford Times〉지의 창간에 참여하고 그 편집자가 되었다. 이듬해 코네티컷 주의회의 최연소 의원이 되어 1835년까지 활약했다. 열렬한 잭슨파 민주당원인 그는 코네티컷 주 일반 회사법을 제정하는 데도 참여했는데, 이 법은 다른 주의 모범이 되었다.
1835년 주 감사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842, 1843년 재차 그 자리를 맡았다. 1836년 잭슨은 그를 하트퍼드 우체국장에 임명했는데, 휘그당이 1841년 권력을 잡을 때까지 그 직책을 맡았다. 1846~49년에는 해군 식량·의복 조달국장으로 일했다. 그는 1854년 민주당을 떠나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꾸었다. 1856년 뉴잉글랜드 최초의 공화계 신문 가운데 하나인 〈하트퍼드 이브닝 프레스 Hartford Evening Press〉를 창간하고 거기에 많은 글을 썼다.
1861년 링컨은 그를 해군장관에 임명했는데, 이것은 내각에 뉴잉글랜드 출신을 임명해야 하는 정치적 필요성 때문이기도 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매우 유능한 행정가이며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군사전략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남부연합 지지자들의 이탈로 배도 얼마 남아 있지 않고 전력도 크게 약화된 해군을 이내 대규모의 기동력 있는 해군으로 만들어놓았다. 또한 비판을 무릅쓰고 철갑함 건조를 허가했고, 뇌물수수를 척결했으며, 장교 승진에 있어 근무연수보다 공과를 우선으로 했다. 남부를 서서히 압박하여 항복을 받아내려 했던 '애너콘다 계획'의 입안자 중 한 사람이며 남부를 고립시키고 둘로 분리시킨 해상봉쇄를 능숙하게 지휘했다.
1869년 장관직에서 물러났는데, 역대 해군장군 중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다. 그후 공화당을 탈당했으며, 1872년 자유공화당을, 187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새뮤얼 틸던을 지지했다. 말년에는 잡지 기사와 〈링컨과 수어드 Lincoln and Seward〉(1874)라는 책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죽고난 뒤에 〈기디언 웰스의 일기 Diary of Gideon Welles〉(1911)가 출판되었는데, 역사가들은 남북전쟁 당시의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이 책의 통찰력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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