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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영화산업에 분장술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분장미술가 가문.
영국 아일오브와이트에서 태어난 조지 웨스트모어(1879~1931)는 보어 전쟁에 참전했으며 고향 친구인 에이다 새비지(1923 죽음)와 결혼한 뒤 그의 첫번째 미용실을 차렸다. 그뒤 캔터베리로 이주했으며 캐나다·미국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미용사로 일하다가 1917년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셀리그영화사에 일자리를 얻어 영화사상 최초로 분장부를 만들었다. 몇 달 뒤 트라이앵글영화사로 자리를 옮겨 메리 픽퍼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릴리언 기시, 도로시 기시, 빌리 버크, 노마 탤미지, 테다 바라 등과 같은 스타들의 분장을 맡았다. 그러나 1920년대에 그의 작업은 아들들의 작업에 눌려 빛을 잃게 되었고 불행했던 2번째 결혼 등 우울한 일들이 겹쳐 1931년 자살하고 말았다.
남아 있는 6명의 아들은 모두 주요한 영화사에서 분장부의 장(長)이나 차장으로 일했다.
'몬트'로 알려진 몬터규 조지 웨스트모어(1902~40)는 처음에는 세실 B. 데밀 같은 감독을 위하여 프리랜서로 활동했으나 마침내 데이비드 O. 셀즈닉영화사에 들어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1939)의 촬영과 스크린 테스트 작업중 분장을 맡았다.
'퍼스'로 알려진 퍼시벌 해리 웨스트모어(1904~70)는 퍼스트내셔널영화사에서 분장책임자로 일했으며, 뒤에 퍼스트내셔널픽처스사를 인수한 워너브라더스영화사에서 27년 동안 근무했고 말년에는 유니버설영화사에서 일했다. 퍼스는 웨스트모어가의 가족들 모두가 자금을 투자하여 선셋 대로 위에 우아하게 지은 '웨스트모어 저택'(1935~65)의 관리를 담당하기도 했다.
퍼스의 쌍둥이 동생이며 '언'으로 알려진 어니스트 헨리 웨스트모어(1904~68)는 처음에는 퍼스트내셔널에서 일하다가 RKO영화사의 분장담당 책임자가 되었다. RKO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영화 〈시마론 Cimarron〉으로 최초로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가 분장미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2번째 분장상은 1982년에 이르러서야 수여됨). 언은 그뒤 20세기폭스사에서 분장 감독으로 일했다.
'월리'로 알려진 월터 제임스 웨스트모어(1906~73)는 파라마운트사에서 41년간(1926~67) 분장 책임자로 일했다.
'버드'로 알려진 해밀턴 아돌프 웨스트모어(1918~73)는 파라마운트사와 20세기폭스사에서 일했으며 그뒤 24년간(1946~70) 유니버설영화사에서 분장을 담당했다.
프랭크 웨스트모어(1923~85)는 오랫동안 파라마운트사와 관련을 맺었고 여러 텔레비전 기획제작사들과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는 M. 데이비드슨과 공동으로 〈할리우드의 웨스트모어가 The Westmores of Hollywood〉(1976)라는 책을 펴냈다.
제3대 웨스트모어가 중에서도 몇 명이 공연에 필요한 분장뿐 아니라 얼굴화상, 질병, 사고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성형분야에 이르기까지 분장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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