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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3. 10. 6, 아일랜드 카운티워터퍼드 던가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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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5. 6. 25,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
국적 | 아일랜드 |
요약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최초의 핵 입자가속기인 코크로프트-월턴 장치를 개발해 영국의 존 더글러스 코크로프트 경과 함께 195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원자구성입자를 가속시키는 장치의 출현은 핵의 구조연구를 발전시키는 한편, 핵 물리학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월턴은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벨파스트의 메서디스트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1926년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 및 실험과학을 배웠다. 1927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러더퍼드 경의 지도를 받으며 1934년까지 코크로프트와 함께 연구했다. 1928년에는 나중에 개선되어 베타트론 가속기와 선형 가속기에서 쓰이게 된 입자가속법 2가지를 창안했다. 그러나 당시엔 아직 필요한 기법들이 개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2가지 모두 성과가 없었다. 그후 1929년 월턴과 코크로프트는 가속기를 발명하였으며, 1932년 4월에는 유리 실린더와 진공관, 그리고 자동차 배터리 등으로 만든 장치를 이용, 양성자 광선을 리튬에 쏘아 리튬 원자를 2개의 헬륨 원자로 분해하는 데 성공했다. 월턴과 코크로프트가 방사성 원소를 사용하지 않고 원자를 분해했다는 소식은 금방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 실험 결과는 그들이 15개 원소의 핵 분해에 성공한 뒤에야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34년 더블린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로 돌아가 그곳에서 40년 동안 특별연구원으로, 그후에는 명예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1946∼74년에는 에라스무스 스미스좌(座) 자연철학 및 실험철학 교수를 지냈고, 1952년부터는 더블린 고등연구소의 우주선물리학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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