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원탁

다른 표기 언어 Round Table , 圓卓

요약 브리튼 왕국의 전설적인 왕 아서가 사용한 탁자.

원탁(Round Table)

ⓒ Schlaier/wikipedia | CC BY-SA 3.0

저지의 와스가 쓴 〈브루트 이야기 Roman de Brut〉(1155)에 처음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아서 왕은 거기에 앉는 신하는 누구도 자기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려고 원탁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13세기와 그 이후의 로맨스에 나타난 원탁의 문학적 가치는 아서 왕궁의 기사들에게 각자의 이름과 성격을 부여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원탁의 동료의식은 실제로 중세 후반에 유럽에서 확립된 기사도에 비견되며, 많은 점에서 기사도의 원형이 되었다. 토머스 맬러리 경이 〈아서 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을 쓴 15세기말경에는 기사도 개념이 위대한 군주 밑에서 확립된 고결한 전우애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로베르 드 보롱의 시 〈아리마티의 조지프 Joseph d'Arimathie〉(1200경)에서 주인공 퍼시벌이 찾는 성배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한 술잔과 동일시되었다. 요셉은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탁자를 만들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자리를 상징하는 빈 자리를 남겨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죽음의 자리'(Siege Perilous)라고 불리는 이 빈 자리에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성배 영웅만이 안전하게 앉을 수 있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앉으면 죽었다.

13세기 내내 성배 주제는 통속 연작(Vulgate cycle)과 후기 속(續)불가타판 로맨스로 알려진 한 무리의 산문 로맨스 속의 아서 왕 전설과 합쳐져, 성배 탁자를 본떠 빈 자리를 남겨둔 원탁은 조언자 멀린이 아서 왕의 아버지인 유서 펜드래건 왕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굳어졌다. 원탁은 카멜리드의 레오그랜 왕이 소유했다가 그의 딸 귀네비어가 아서와 결혼할 때 지참금의 일부로 아서에게 주었다. 원탁의 기사단에는 가장 용감한 기사만 들어올 수 있었으며, 죽음의 자리는 성배를 찾아내 아서 왕국의 환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완벽한 기사 갤러해드가 올 때를 위해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윈체스터 시에는 정복자 윌리엄이 짓기 시작해 1235년 완성한 성의 유적지인 큰 홀이 있는데, 이곳에는 소위 아서 왕의 원탁이라 불리는 것이 벽에 붙어 있다. 지름이 5.5m인 이 원탁은 13세기에 만들어져, 헨리 7세의 재위기간에 튜더 왕가의 색상인 녹색과 흰색으로 다시 칠해졌다(→ 아서 왕 전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공예

공예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원탁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