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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적 제157호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유교적인 의례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하늘을 상징하여 제단의 형태는 둥근 모양이었다.
고대국가 때부터 제천의식이 행해졌으나 유교적인 예의 관념에 따라 제도화된 원구제는 고려시대에 실시되었다. 고려 성종 때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왕권의 초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도화했으나, 고려 말 배원친명정책 이후 원구제는 폐지되었다.
세조 때인 1457년 원구제가 거행되기 시작했으나 1464년을 끝으로 다시는 거행되지 않았다. 원구단이 다시 건립된 것은 189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후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원구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 호텔을 건축했다. 현재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8각정 황궁우만 전해오고 있다.
사적 제157호. 원구단(圓丘壇)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유교적인 의례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단을 일컫는다. 하늘을 상징하여 제단의 형태를 둥근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같은 이름이 생겨났다.
고대국가 때부터 제천의식이 행해졌으나 유교적인 예(禮)의 관념에 따라 제도화된 원구제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실시되었다. 고려 성종 때 새로운 지배체제 확립을 위해 제도화했는데, 이는 왕권의 초월성을 강조하려는 국가의지의 소산이었다. 고려의 원구제는 중국의 이른바 천자국의 원구계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대상은 5방의 천신뿐만 아니라 그 전체 위에 군림한다는 호천상제도 포함했다. 그러나 고려말 배원친명정책(排元親明政策) 이후 원구제는 폐지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국가의 사전(祀典)을 정비해가던 국초에 성리학적인 명분론에 따라 제후국가인 조선에서 '천자의 제천의례'인 원구제를 거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큰 가뭄이나 비상의 사태를 당했을 때는 최후의 기우 대상으로 방편적으로만 거행되었다. 이는 당시 독자적 실재의 확립이라는 현실과 성리학적 명분론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진 제천의례였다. 이러한 가운데 1457년(세조 3)에 원구제가 거행되기 시작했으나 1464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거행되지 않았다. 1616년(광해군 8) 원구제를 또 한 차례 거행하려고 했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그 자세한 전말은 알 수 없다.
원구단이 다시 건립된 것은 1897년(광무 1)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고친 다음이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원구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 호텔을 건축했다. 현재는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8각정 황궁우 유적만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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