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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592년 5월 한성을 함락한 왜군은 전국 곳곳을 점령하고 분탕질을 했다. 이들 중 일부가 용담·진안을 거쳐 웅치를 넘어서 전주에 들어가기 위해 이치에서 전주로 향했다. 이에 권율은 직접 이치를 막고, 김제군수 정담에게는 웅치를 막도록 했다. 1592년 7월 8일 왜군이 전병력을 동원해 전면공격을 감행해, 제1·2선이 무너지고 제3선을 지키던 정담 역시 화살이 다하도록 최후까지 싸운 다음 백병전을 전개하다 전사했다. 왜군은 이 전투에서 죽은 조선군의 시체를 모아 길가에 큰 무덤을 만들어 그 위에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는 표목을 세워놓고, 웅치를 넘어 전주성으로 향했다. 전주성에서는 순찰사 이광이 도망쳤으나 이정란이 백성들과 함께 성을 지켜 왜군은 물러갔다.
1592년(선조 25) 4월 부산을 침입하고, 5월에 한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전국 곳곳을 점령하고 분탕질을 자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산에 주둔한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 휘하의 일본군 중 일부는 용담·진안을 거쳐 웅치를 넘어서 전주에 들어가려 했으며 일본별군 1,000명은 진산을 치고 이치에서 전주로 향했다.
당시 광주목사 권율이 격문을 띄워 1,500명의 군사를 모아 훈련한 다음 북상하자 조정에서 그를 전라도절제사로 삼았다. 권율은 직접 부하를 지휘하여 이치를 막고, 김제군수 정담에게는 웅치를 막게 했다. 그리하여 나주판관 이복남(李福男)이 제1선, 의병장 황박이 제2선, 정담은 가장 높은 지역에서 제3선의 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진격에 대비했다.
1592년 7월 7일 수천 명의 일본군 선봉부대가 공격을 개시하자 황박과 이복남은 많은 적을 죽였다. 이튿날 일본군이 전병력을 동원해 전면공격을 감행해, 제1·2선이 무너지고 황박과 이복남도 후퇴했다. 제3선을 지키던 정담도 화살이 다하도록 최후까지 싸운 다음 백병전을 전개하다가 전사했다. 또한 이 전투에 참가한 해남현감 변응정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죽은 조선군의 시체를 모아 길가에 큰 무덤을 만들어 그 위에 '조조선국충간의담'이라는 표목을 세워놓고, 웅치를 넘어 전주성으로 향했다. 전주성에서는 순찰사 이광(李洸)은 도망쳤으나 전전적 이정란이 백성들과 함께 성을 지킴에 따라 일본군은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 이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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