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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8. 2. 10, 알렉산드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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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0. 6. 1, 밀라노 |
국적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의 시인.
현대 이탈리아 시의 재구성을 시도한 에르메티스모 운동의 창시자이다(→ 에르메티스모). 부모는 이탈리아 이주민이었으며 이집트에서 태어나 24세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다. 이집트의 사막지대는 그의 후기 작품에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소르본대학교에서 공부하려고 1912년 파리로 건너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샤를 페귀, 폴 발레리와 당시 전위파 화가인 P. 피카소, G. 브라크, F. 레제와 교분을 맺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의 접촉, 특히 스테판 말라르메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이탈리아군에 입대했으며 전쟁터에서 첫 시집을 썼는데, 매편의 시에 마치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양 날짜를 새겨놓았다. 운율, 구두점, 전통적 형식을 사용하지 않은 시들이 〈매몰된 항구 Il porto sepolto〉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것은 웅가레티가 언어의 수식을 벗어버리고 순수하면서 가장 간결한 형태의 시어를 표현하려 한 첫 시도였다.
미래파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자세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그의 시는 시종일관 최초의 방향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즐거운 난파선 Allegria di naufragi〉(1919)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웅가레티의 첫 시집에 실린 시들을 개작한 시들이 실려 있다. 〈시간에 대한 느낌 Sentimento del tempo〉(1933)에서는 더 많은 변화가 나타나는데, 1919~32년에 씌어진 이 시들에는 더욱 모호한 언어와 난해한 상징적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는 문화협의회를 위해 남아메리카에 건너가 1936~42년에 브라질의 상파울루대학교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가르쳤다. 9세 된 아들이 브라질에서 죽자 그에 따른 상실감과 함께 나치의 잔학한 행위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통분이 그의 시 〈고통 Il dolore〉(1947)에 나타나 있다. 그는 1942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1957년 은퇴할 때까지 로마대학교에서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출간된 중요한 시집으로는 〈약속된 땅 La terra promessa〉(1950)·〈절규와 풍경 Un grido e paesaggi〉(1952) 등이 있다. 말년의 시집으로는 〈노인의 노트북 Il taccuino del vecchio〉(1960)·〈계절의 죽음 Morte delle stagioni〉(1967) 등이 있다. 또한 그는 라신의 〈페드르 Phèdre〉,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모음집 외에도 루이스 데 공고라 이 아르고테, 스테판 말라르메,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이것들은 나중에 〈번역본 Traduzioni〉(2권, 1946~50)에 함께 실렸다. 웅가레티 시는 부분적으로 한국 문단에도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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