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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3. 6. 30, 독일 라이프치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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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3. 8. 1, 동베를린 |
국적 | 독일 |
요약 독일 공산당 지도자.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민주주의 공화국의 최고 실력자였다. 가구제작업을 하던 울브리히트는 1912년 독일사회민주당에 가입해 제1차 세계대전중 동부전선에서 싸우다 2번이나 탈주했다. 전쟁이 끝난 후 새로 만들어진 독일공산당(KPD)에 가입했다.
관료이자 조직가였던 그는 1923년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스탈린이 등장하자 울브리히트는 그의 추종자가 되어 KPD를 볼셰비키화하고 세포조직을 근간으로 당을 편성했다. 1928년에 연방 하원의원이 되어 1929년부터 베를린 공산당 조직을 이끌었다.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자 울브리히트는 해외로 망명했다. 그후 5년 동안 파리, 모스크바, 스페인 내전(1936~39)중의 스페인에서 KPD와 코민테른의 비밀첩보원으로 활동하면서 내내 트로츠키 일파와 다른 일탈자들을 가혹하게 괴롭혔다.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한 1941년초 모스크바에 있던 그는 독일군 포로들에게 공산당선전을 하고 독일군측에서 얻은 정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1945년 4월 30일 독일로 돌아온 그는 KPD의 재건을 도왔으며 소련 점령 지역에 행정부를 조직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KPD와 독일사회민주당(SPD)을 하나로 통합해 1946년 4월 과거 동독을 지배했던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49년 10월 11일 동독 정부가 수립되자 울브리히트는 부총리가 되었고, 1950년에 SED의 서기장직을 겸직했다.
빌헬름 피크 대통령이 죽자(1960) 대통령 직위가 폐지되고 대신 국가평의회가 만들어졌는데, 울브리히트는 의장이 되어 공식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그는 모든 반대세력을 분쇄했고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죽은 뒤 동유럽을 휩쓴 스탈린 격하운동을 봉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권력을 확보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1961)에야 동독 정부는 강권통치를 완화하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화와 탈중앙집권화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동독은 세계에서 가장 공업화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나 울브리히트는 서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1971년 5월 SED 제1서기로 은퇴하게 되었지만 국가 원수로서의 지위는 그대로 간직했다.
1965년 카롤라 스턴의 〈울브리히트 정치적 전기 Ulbricht : A Political Biography〉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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