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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27경, 잉글랜드 베드퍼드셔 에버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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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70. 10. 18, 런던 |
국적 | 잉글랜드, 영국 |
요약
장미전쟁 때 이름을 떨친 요크 가문의 지도자.
Tiptoft는 Tibetot라고도 씀.
잔인하고 법을 남용했기 때문에 '잉글랜드의 백정'이라고 불렸다. 팁토프트 남작 1세의 아들로 옥스퍼드에서 공부했으며 1449년 우스터 백작작위를 받았다. 1456~57년 아일랜드 대의원을 지냈고, 1457, 1459년에는 잉글랜드 사절로서 교황을 만났다.
해외에 있는 3년 동안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했고 이탈리아의 파도바·페라라·피렌체에서 법학·라틴어·그리스어 등을 공부했다. 에드워드 4세 통치 초기에 잉글랜드로 돌아와 1462년 2월 7일 컨스터블(총사령관)이 되었다.
1462년 옥스퍼드 백작 12세 존 드 비어에게, 1464년에는 랠프 그레이 경을 비롯한 랭커스터 가문 사람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1467년 다시 아일랜드 대의원을 맡아 1년간 재임하면서 데즈먼드 백작의 재산과 지위를 빼앗고 백작의 두 어린 아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1470년에는 콘스터블로서 워릭 백작의 추종자 20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처형했다. 랭커스터 가문이 복권하자 우스터는 도망가 숨었으나 발각되어, 자기가 1462년에 형을 선고했던 옥스퍼드 백작 12세의 아들인 옥스퍼드 백작 13세 존 드 비어 앞에서 재판을 받았다.
우스터는 타워힐에서 처형당했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가 죽은 뒤 백작작위는 1485년 왕실로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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