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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공장

다른 표기 언어 外工匠

요약 지방관청에 소속된 장인(匠人).

조선 전기의 수공업은 관장제 수공업(官匠制手工業) 중심이었다.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기술이 뛰어난 공장은 모두 장부에 등록되어 일정한 기간 동안 관청에서 설치한 수공업장에 동원되거나 혹은 정기적으로 전속되었다. 이중 서울에 있는 중앙 관청에 소속된 자를 경공장이라 하며, 지방관청에 소속된 자를 외공장이라 한다.

이들은 대부분 1년 내내 관청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수공업자로서 1년의 일정기간은 공역을 수행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자기 경리를 운영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외공장은 모두 약 3,800명이 등록되어 있으며 그 종류는 모두 28종이다. 이러한 외공장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직종은 제지업(製紙業)이었으며 여기에는 722명의 지장(紙匠)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야장(冶匠)이 462명, 돗자리 수공업자인 석장(席匠)이 385명, 화살을 만드는 시인(矢人)이 350명, 목공업의 목장(木匠)이 340명, 피혁수공업에 종사하는 피장(皮匠)이 313명의 순서로 되어 있다.

〈경국대전〉에 등록되어 있는 외공장의 종류와 수는 당시의 전체 지방 공장의 종류 및 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생각된다. 이들 외공장도 경공장과 마찬가지로 지방관청에 전속된 공장이 아니고, 그 대부분은 민간수공업자로서 지방관아에 작업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동원되었다. 지방관아에서 공장을 동원하여 물품을 제조하는 것은 감영·군·현·수영·병영 등 관청 자체의 수요품과 공물·진상품(進上品) 등을 마련할 경우이다. 이 경우 장인 중에서 가장 기술이 우수한 자가 동원되었고, 그들 중의 일부는 거의 관아에 전속되어 일정한 급료를 받고 작업에 종사했다.

외공장들의 분포상태를 살펴보면, 시인·궁인·목공(木工)·칠장(漆匠)·궁현장(弓弦匠)·갑장(甲匠)·유장(諭匠) 등은 전국 350개 군현들에 거의 빠짐없이 배치되어 있고, 그 인원도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특수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 분야에 1·2명 혹은 3·4명의 수공업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당시 지방수공업에서의 분업발전이 극히 미비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외공장제의 분포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봉건국가는 지방관청 수공업을 자급자족적인 자체 수요에 필요한 제품생산 범위로 그 규모를 제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수공업 발전을 제한하는 봉건국가의 정책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외공장제는 16세기 이후 농업생산력 발달,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을 배경으로 국역제(國役制)가 변질되는 과정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즉 농촌수공업의 발달로 관장제 수공업이 쇠퇴하고 사영수공업(私營手工業)이 발전함에 따라 장인들은 부역노동에 종사하는 대신 대부분 납포장의 형태로 변질되었다. 이제 중앙·지방 관청을 막론하고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구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외공장도 부역노동에서 해방되어 시장을 대상으로 한 상품생산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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