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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23(고종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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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283(충렬왕 9) |
국적 | 고려, 한국 |
요약 고려의 왕족.
현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청화후(淸化侯) 경(璟)이고, 승화후(承化侯) 온(溫)의 동생이다. 용모가 준수했고 말타기·활쏘기를 잘했으며 지략이 있었다. 영녕공(永寧公)에 봉해졌다. 당시 몽골이 고려 국왕의 친조(親朝)를 요구하자 고려정부는 이를 대신하여 1241년(고종 28) 영녕군을 왕의 친아들이라 칭하고 귀족의 자제 10명과 뚤루게[禿魯花 : 인질]로 몽골에 보냈다. 이때 추밀원사 최린(崔麟), 장군 김보정(金寶鼎), 좌사간 김겸(金謙)이 동행했다. 그뒤 이 사실이 발각되었으나 몽골황제의 신임을 받아 무사했다. 1253년(고종 40) 몽골은 고려 국왕이 출륙(出陸)하지 않자 보복적인 출병을 감행했는데 이때 몽골군을 종군하고 있던 그는 최항(崔沆)에게 서한을 보내 "이번 출병은 왕이 출륙을 거절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왕이 직접 출륙하기 어렵다면 태자 전이나 안경공(安慶公) 창을 왕 대신으로 보내 철군을 간청하라"는 계책을 알려주었으나 최항의 거절로 철군의 교섭은 좌절되었다. 1255년 몽골 헌종(憲宗)의 명을 받아 차라다이[車羅大]를 따라 고려에 쳐들어와서 약 1년 간 여러 군을 공격하고 안무고려군민총관(安撫高麗軍民摠管)이 되었으며 2,000여 호를 분령(分領)받아 심주(瀋州 : 奉天)를 다스렸다. 1270년(원종 11)에는 고려에서 임연(林衍)의 반란이 일어나 파병을 요청하자 원나라 세조(世祖)의 명을 받아 출병했다. 몽골에 볼모를 바치는 납질(納質)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들 볼모는 숙위(宿衛)의 일을 맡았고 일정한 기간 후에는 본국으로 돌아와서 다른 볼모들과 교체되기도 했으나 일부는 몽골에 영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몽골에 볼모로 와 동경(東京 : 遼陽)에서 홍복원(洪福源) 집에서 우거(寓居)하다가 홍복원이 죽은 후에는 원 세조로부터 안무고려군민총관에 임명되어 고려의 유민(流民)을 관령하고 심양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본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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