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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아파트 붕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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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70년 4월 8일 오전 8시 20분경부터 무너졌으며, 입주자와 인부 등 70여 명 가운데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참사였다. 와우 시민 아파트는 서울특별시 내의 판잣집 등 불량건축물 정리와 변두리로의 인구분산을 위한 주택정책의 하나로 1969년부터 시행된 '2,000동 시민 아파트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건축된 아파트였다. 붕괴사고원인은 시 당국의 무모한 불도저식 개발방법과 낮은 공사비 책정, 시공회사의 기초공사 허술, 짧은 공기 등의 부실공사와 붕괴위험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은 마포구청과 경찰에 있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김현옥이 인책을 받아 물러나는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

1970년 4월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

ⓒ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wikipedia | CC BY-SA 4.0

당일 오전 8시 20분경부터 무너졌으며, 입주자와 인부 등 70여 명 가운데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와우시민 아파트는 서울특별시 내의 판잣집 등 불량건축물 정리와 변두리로의 인구분산을 위한 주택정책의 하나로 1969년부터 시행된 '2,000동 시민 아파트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건축된 아파트였다.

붕괴사고원인은 시 당국의 무모한 불도저식 개발방법과 낮은 공사비 책정, 시공회사의 기초공사 허술(받침기둥에 철근 소량 사용과 적은 시멘트 배합), 짧은 공기 등의 부실공사와 붕괴위험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은 마포구청과 경찰에 있었다.

시공회사인 대룡건설(주)이 맡은 제3공구 13~16동 아파트에 투입된 총예산은 관급자재로 시멘트 1만 6,614부대, 철근 105만 5,813t(932만 7,026원) 등 2,638만 3,455원이었다. 이 예산은 택지조성비·축대비 등을 제외하면 건축비가 평당 1만 원도 채 안 되는 부실한 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서울시장이던 김현옥이 인책을 받아 물러나는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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