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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인천광역시 서해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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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21,551 (2017) |
면적 | 172.48㎢ |
행정구역 | 7개면 2개출장소 75개리 272개반 |
사이트 | http://www.ongjin.go.kr |
요약 인천광역시 서부 서해안에 있는 백령도· 대청도·소청도·대연평도·소연평도 등 서해5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 113개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수산자원이 풍부한 어업의 전진기지로 꽃게를 비롯한 다양한 어종이 어획되며 굴·바지락·김 등의 양식도 활발하다. 군사 요충지로서 3·1운동기념비·반공유적전적비·무명용사전적비 등 역사적인 각종 기념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육지와는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여객선과 행정선을 통해 연결된다. 면적 172.48㎢, 인구 21,551(2017).
인천광역시 서부의 경기만에 흩어져 있는 섬들과 옹진반도 주변에 자리한 백령도·대청도·소청도·대연평도·소연평도의 서해5도로 이루어진 군. 8·15해방, 6·25전쟁, 1973년의 부천군 폐지, 1995년의 전국행정구역개편 등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관할구역이 결정되었다. 북도면·연평면·백령면·대청면·덕적면·자월면·영흥면, 장봉출장소·소청출장소 등 7개면 2개출장소 75개리가 있다(행정리 기준, 법정리 기준 26개리). 군청소재지는 인천광역시 남구 낙섬길이다. 면적 172.48㎢, 인구 21,551(2017).
연혁
지금의 인천광역시 옹진군은 옛 옹진도호부의 도서지역과 강령현의 일부 도서가 합해 이루어진 군이다. 옛 옹진도호부는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옹천(翁川)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 폭지군(瀑池郡:해주)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옹진으로 개칭하고, 1018년(현종 9)에 현령이 파견되었으며, 장연현(長淵縣)과 영강현(永康縣)을 속현으로 포함했다. 조선에 들어 1397년(태조 6)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가 현을 다스리도록 했다. 1423년(세종 5)에 첨절제사로 바꾸었다가 후에 다시 현령을 파견했다. 1719년(숙종 45)에 중부 이남 지방과 관서지방을 연결하는 해로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던 이곳에 황해도의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水營)을 신설해 황해도 해안 방어의 중심지를 삼음에 따라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백령도·대청도·소청도 등의 도서는 옛 강령현(康翎縣) 지역이다. 강령현은 본래 고구려의 부진이(付珍伊)였는데, 757년에 영강현으로 개칭, 폭지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 옹진의 속현으로 합속되었다가 1106년(예종 1) 감무가 파견되어 가화(嘉禾:송화)를 함께 다스렸다.
조선초인 1414년(태종 14)에 장연현에 병합되었다가 곧 복구되었으며, 1428년(세종 10) 백령현(白翎縣:백령도 일대)과 합해 강령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진을 설치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해주부 옹진군·강령군, 1896년 황해도 옹진군·강령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해주의 두입지였던 교정면·가천면·마산면이 옹진군에 이관되고, 1909년에 강령군이 폐지되어 옹진군에 합속됨으로써 옹진군의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같은 해에 용연면이 용천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서면 등 6개면은 그대로, 동면·남면이 동남면으로, 아미면·신흥면이 흥미면으로, 봉현면·구주면이 봉구면으로 통합되었다. 1945년 8·15해방 후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이 나뉨에 따라 군내면·가천면·교정면의 일부가 38°선 이북에 속하게 되었고, 반면에 38°선 이남의 장연군 백령면과 벽성군 해남면·송림면·동강면이 옹진군에 편입되었으며, 황해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1953년 휴전협정 조인으로 백령도·대청도·소청도 등 섬 지역을 제외한 육지부와 어화도·수위도·용호도 등이 휴전선 북쪽에 위치, 미수복되어 북한의 황해남도 옹진군이 되고, 남한의 경기도 옹진군은 백령면·송림면 등 도서로만 구성된 군이 되었다.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영종면·북도면·용유면·덕적면·영흥면·대부면 등 도서지역 6개면을 편입했다. 1974년 대청면, 1983년 자월면이 신설되었으며, 1989년 영종면과 용유면이 인천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대부면을 제외한 옹진군 7개면이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이관되었다. 1999년 송림면이 연평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관할지역 전체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내에는 백령도·대청도·대연평도·소연평도·덕적도·영흥도·자월도·시도·신도 등 유인도 26개와 무인도 74개가 있다. 대청도의 삼각산(343m), 덕적도의 국수봉(314m)을 제외하고는 영흥도의 국사봉(128m) 등 모든 섬들의 최고지점이 200m 이하이며, 대부분 산지 또는 경사지로 이루어졌다.
평지는 일부 섬의 계곡과 해안을 따라 극히 좁게 나타나는데, 백령도·영흥도에는 비교적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어 있다. 섬의 산지계곡을 따라 하천이 흘러내리기도 하지만 유로가 짧아 건기에는 말라버린다.
서해5도와 일부 무인도에서는 해식애를 볼 수 있으며, 경기만 남부해역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연평균기온 12℃ 내외, 1월평균기온 -3.5℃ 내외, 8월평균기온 25℃ 내외로 기온의 연교차는 28.5℃이다. 겨울철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같은 위도상의 동해안보다 춥다. 이는 겨울철 이 지역의 어로활동에 장애가 된다. 연평균강수량은 1,259.8㎜ 정도이다. 산지에는 소나무·떡갈나무·밤나무·참나무 등이 자란다.
인구
전체적으로 인구유출지역이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3만 9,829명, 1985년 3만 5,398명, 1990년 2만 75명으로 계속 감소해왔으며, 1980~90년에 50% 가까이 줄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만 347명에 불과하다. 가구수는 1996~2020년에 5,042가구에서 1만 1,997가구로 증가했다.
이러한 인구감소는 수산업과 농업의 전반적인 쇠퇴에 따른 것으로 특히 덕적면·자월면·영흥면의 감소율이 높다. 군 인구의 약 44%가 영흥면·백령면에 모여 있으며 자월면(976명)은 상주인구가 적다. 취락은 주로 평지가 있는 해안이나 만입부에 분포하며, 기능적으로는 어업과 농업의 겸업촌, 형태적으로는 괴촌이 대부분이다. 정기여객선이 드나드는 포구취락은 대부분 큰 집촌을 이루고 있다. 특히 연평면 연평리(대연평도)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도시적인 경관이 형성되어 있다.
산업과 교통
농업과 수산업이 중심 산업이다. 총경지면적 27.63㎢ 가운데 논 12.13㎢, 밭 15.5㎢로 경지율은 16.8%이다(2006). 임야는 122.4㎢로 군 면적의 74.4%를 차지한다. 쌀·콩·감자, 각종 채소류가 주요농산물이며, 밤·대추·도토리·은행·표고버섯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축산업은 소규모로 행해지나 산양·염소·개·토끼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특히 약용으로 인기가 있는 산양은 대청면·덕적면 등지에서 방목이 이루어져 인천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경기도 내 전체 사육두수의 약 30%를 차지했다. 군내에는 총 117개 광구가 있으나 현재 가동중인 광산은 없다.(2006).
수산업은 군의 중심 산업으로 어선 587척을 보유하고 있다(2006). 꽃게·새우·복어·피조개·가자미 등이 주로 잡히고 굴·바지락·김 등의 양식도 활발하며 그 비중이 높다.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연평도 근해의 조기어장은 예로부터 조기파시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어 현재로서는 농업이 수산업보다 비중이 큰 산업이 되었다. 또한, 군내에는 수산물 가공시설이나 공동이용시설이 미흡하여 이곳 어민들은 대체로 수산물협동조합을 거치지 않고 인천항으로 직접 가거나 현지에서 중간상인에게 판매하고 있다.
육지와의 연결은 전적으로 해상교통에 의존한다. 인천항을 기점으로 인천-백령 간을 비롯해 영흥도·덕적도·대연평도·대청도·소청도·자월도 등으로 여객선과 행정선이 정기적으로 운항되고 있다. 도로는 군도 175.7㎞가 있으나, 포장률이 51.2%에 불과하다(2006).
유물·유적·관광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2), 향토유적 4점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돌칼·조개무지 등이 송림면 연평리, 북도면 시도리, 백령면 진촌리에서 발견되었다. 유교문화재로는 송림면 연평리의 충민사가 있다.
이 사당은 연평도 주민들에게 조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전해지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곳이다. 천연기념물로는 대청면 대청리에 대청도의 동백나무자생북한지(천연기념물 제66호)와 북도면 신도의 노랑부리백로 및 괭이갈매기번식지(천연기념물 제360호)가 있다. 그밖에 덕적면 진리의 3·1운동기념비, 백령면 진촌리의 반공유적전적비·무명용사전적비 등 6·25전쟁과 관련된 각종 기념물이 있다.
주요관광지로는 해안의 기암괴석이 바다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어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백령도의 두무진, 여름철 피서 관광지로 이름이 높은 덕적면 서포리해수욕장과 북도면 시도리해수욕장 등이 있다. 서포리해수욕장은 1.5㎞에 이르는 백사장과 울창한 노송, 해당화, 기암괴석 등이 어우러져 경치가 빼어나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그밖에도 곳곳에 바다낚시터가 많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연간 찾는 관광객수는 191만 명에 이른다(2006).
교육·문화·의료·복지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21년 개교한 대청초등학교이다. 1930년대에는 연평·장봉·덕적·영흥 초등학교와 자월초등학교 승봉분교, 덕적초등학교 소야분교가 세워졌으며 1940년대에는 백령·소청·신도·자월 초등학교와 연평중학교가 문을 열었으며 1950년대에는 백령·덕적 중학교, 백령종합고등학교가 세워졌다. 2017년 기준 유치원 10개소, 초등학교 6개소,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섬이 많아 초등학교 분교가 다수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풍어굿의 하나인 배연신굿이 있다. 이 굿은 대개 음력 정월·3월·9월·10월에 나누어서 행하며 해신과 함께 임경업 장군을 받든다. 설화 가운데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내용의 것이 많으며 〈용바위전설〉·〈갓쓴비석전설〉·〈장수바위전 설〉·〈아기장수설화〉·〈고수레유래담〉 등이 전해지고 있다. 민요로는 여러 종류의 뱃노래가 있고 〈방앗소 리〉·〈시집살이노래〉·〈방아타령〉·〈덕적도아리랑〉 등이 널리 불리고 있다.
중국과 연결되는 해로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가톨릭과 그리스도교가 일찍 전파되었다. 2017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1개소, 의원 1개소, 치과병원 1개소, 한의원 2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1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70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3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1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3개소, 어린이집 12개소가 있다. 환경오염은 관광객들에 의한 관광지의 자연훼손과 쓰레기 방치, 해난사고에 의한 기름유출 등이 주된 원인이지만 최근에는 경인공업지대에서 유입되는 각종 폐수도 해수오염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역은 오염도가 심각하지 않으며 각종 해수오염의 예방과 대책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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