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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0. 10. 11, 충남 서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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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22. 11. 28, 서울 |
국적 | 한국 |
요약 극작가·연출가.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68년 <환절기>가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실험적이고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논란과 뜨거운 호응을 동시에 얻고,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인정받았다. 대표 작품으로는 <초분>, <태>, <자전거> 외 다수가 있다. 극단 목화를 설립했고, 국립극장 예술감독, 극단 목화 레파토리컴퍼니 및 소극장 아룽구지 대표,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석좌교수를 지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 1940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당시 법관으로 근무했던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끌려가자, 할머니 손에 이끌려 40여 일 동안 걸어서 고향인 서천 아룽구지마을로 갔는데, 이후 그곳에서 살던 3년의 경험이 그의 연극생활에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1964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는데, 이후 생활 방편으로 <연세춘추>에 소설을 연재하고 희곡 원고를 투고하는 한편, 학교 노랫말에 응모하는 등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1967년 희곡 <웨딩드레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듬해 국립극장과 <경향신문>이 공동으로 공모한 장막극(長幕劇)에 <환절기>가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1968년부터 실험극단에서 <환절기>,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교행>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969년 동랑레퍼터리극단으로 옮겨 <루브>를 연출하고, 1972년에는 몰리에르의 작품 <스카핑의 간계>를 우리 식으로 만든 <쇠뚝이 놀이>를 발표했다. 이어 <초분>(1973)과 <태>(1974) 등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자리 잡았다. 이후 꾸준히 실험적이고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논란과 함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1986년 극단 목화를 창단하고, 1998년 성좌극장 대표, 2006~10년 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극단 목화 레파토리컴퍼니와 소극장 아룽구지 대표이자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극단 목화를 통해 박영규·손병호·김병옥·정은표·성지루·박희순·임원희·장영남· 유해진 등의 배우를 배출했으며,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춘풍의 처>(1976), <자전거>(1983),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 <백마강 달밤에>(1993), <여우와 사랑을>(1996), <천년의 수인>(1998), <코소보 그리고 유랑>(1999), <잃어버린 강>(2000), <지네와 지렁이>(2001), <내 사랑 DMZ>(2002),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2000), <만파식적>(2005), <용호상박>(2005), <템페스트>(2010), <도토리>(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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