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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미국 뉴욕 주 남동부, 롱아일랜드 북쪽 해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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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300,385명 (2017 추계) |
면적 | 438.73㎢ |
대륙 | 북아메리카 |
국가 | 미국 |
요약 미국 뉴욕 주 남동부 나소 군의 읍.
롱아일랜드 중부의 북쪽 해안에서 남쪽 해안까지 뻗어 있으며, 자치체와 미편입 지역공동체를 합해 약 30여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1653년 피터 라이트, 새뮤얼 메이오, 윌리엄 L. 레버리치 목사가 이끄는 이주민들이 로드아일랜드를 떠나 오이스터베이 항에 도착하면서 처음으로 정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660년 첫 읍민회의가 열렸고, 1667년 총독으로부터 양도받은 땅에 읍이 세워졌다.
독립전쟁 동안 레인햄 홀(1738, 지금은 박물관)이 영국군 사령부로 쓰였고, 주민인 샐리 타운센드가 제공한 정보로 영국군 스파이 존 안드레이 소령을 체포한 일이 있었다. 식민지시대 건축물로는 오이스터 만에 있는 위스티어리아 하우스, 마티네콕의 프렌즈 미팅 하우스, 매사피콰 파크의 트라이언 하우스와 카먼 홈스테드 등이 유명하다.
오이스터베이의 거주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시어도어 루스벨트로, 그가 살던 3층짜리 대저택인 새그모어 힐(1880, 코브넥에 건축됨)은 여름철 대통령 관저(1901~09)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국립사적지이다. 가까이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기념관과 트레일 사이드 박물관이 있으며, 루스벨트의 무덤이 읍에서 멀지 않은 영 공동묘지에 있다.
포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19세기초까지 농업지역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836년 롱아일랜드 철도가 들어서고, 이어 세기가 바뀔 무렵 트롤리식 전차가 생기자 금융계와 산업계의 거물들이 광대한 저택들을 곳곳에 세우는 등 주거지역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농촌 및 주거지역으로 계속 남아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베스페이지와 파밍데일에서 항공기 산업이 발달하면서 공업지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현재 오이스터베이는 폭넓은 경제기반을 갖추었으며, 베스페이지·파밍데일·힉스빌·제리코·플레인뷰·시오셋·우드베리에는 계획공업단지들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파밍데일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 농업기술대학(1912 설립), 올드웨스트베리에 있는 스테이트유니버시티오브뉴욕대학(1968), 브룩빌에 있는 롱아일랜드대학교의 C.W. 포스트 센터(1955) 등이 있다.
1936년에 제정된 나소 군 헌장은 승인을 받은 자치체의 권리를 보호하는 반면 이곳에 속해 있는 지역공동체들이 자치체가 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자치체로는 매사피콰파크와 오이스터베이코브가 있으며, 자치체로 인가를 받지 않은 주요 지역공동체로는 오이스터베이빌리지·제리코·매사피콰·이스트매사피콰·힉스빌·플레인뷰·사우스파밍데일 등이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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