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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게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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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7. 6. 25, 일본 나가노 현[長野縣]
사망 2000. 5. 14, 도쿄[東京]

요약 일본의 정치인.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 William Vasta/wikipedia | Public Domain

정치인의 아들이었던 오부치는 1958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도쿄[東京]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재학하던 중 그는 대학의 웅변 클럽에 가입하여 웅변술을 익혔으며, 정치인도 신체가 강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보디빌딩과 합기도를 배웠다. 1962년 그는 영문학 학위를 땄다. 그 이듬해인 26세 때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오부치는 11선을 기록하면서 서로 경쟁적인 정치적 분파들간에 막후 타협을 이끌어내는 당내 통합 솜씨로 성가를 높였다. 1973년 그는 총리 비서로 근무했으며, 1987년에는 관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 약칭 자민당) 내에서도 꾸준히 서열이 올라 부간사장(1984)과 간사장(1991)을 역임했다. 1997년 하시모토는 그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

1998년 7월 30일 오부치 게이조는 그 달 초에 있었던 참의원 선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중도하차한 전 총리이자 여당인 자민당의 총재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의 뒤를 이어 새 총리로 선출되었다. 오부치가 당 총재에 오른 것은 자민당의 노련한 막후 실력자들이 한층 역동적인 리더십을 요구하고 나선 젊은 당원들에게 승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오부치는 평범하고 온건한 입장의 외무성 장관 출신으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미스터 평균치', '식어버린 피자'라는 평판을 받았지만, 자민당의 5개 파벌을 이끌어가는 유능한 정치가로 간주되었다.

총리가 된 후 오부치는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부치 내각은 악성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한 핵심 법안의 의회 승인을 얻어냈고, 세금을 줄이고 소비를 늘렸다. 이러한 정책은 1999년 중반까지 효과를 나타내며 일본의 경제가 점점 나아졌다. 하지만 2000년 4월 2일 오부치는 잠을 자던 중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고, 6주 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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