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미상 |
---|---|
사망 | 1564. 2. 9, 아일랜드 도니골 리퍼드 |
국적 | 아일랜드 |
요약 아일랜드인 최초의 티코늘 대(大)영주.
오닐 가문과 벌인 전쟁과 자신의 아버지 및 아들과의 집안싸움으로 얼룩진 일생을 보냈다. 휴 더브 오도늘의 아들로 1511년경 아버지가 로마로 순례를 떠난 동안 티코늘 통치를 위임받았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는 최고의 권위를 행사하고 있었다.
그후 가족간에 분쟁이 일어났으나, 오닐 가문의 도움으로 티코늘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1522년 오닐 가문과 오도늘 가문은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티론 백작 1세 콘 바크 오닐은 오도늘 가문을 굴복시키기로 결심했다. 먼스터와 코노트에 사는 여러 씨족들의 지원과 잉글랜드의 파견대 및 앤트림의 맥도널스 가문의 도움으로 오닐은 티코늘의 대부분을 유린했으나, 휴 더브오도늘과 매너스 오도늘의 야습을 받아 참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은 계속되었다. 1531년 오도늘은 헨리 8세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잉글랜드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다.
1537년 먼스터의 영주 토머스 피츠제럴드와 그의 친척 5명이 반란죄로 처형되었다. 잉글랜드 정부는 숙모 레이디 엘리너 매카시가 비밀리에 보호하고 있던 12세 소년, 즉 킬데어 백작작위 계승자인 제럴드를 붙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매카시 부인은 이 소년에게 강력한 보호자를 확보해주기 위해 1537년 7월 휴 도브가 죽자 오도늘 가문의 수령이 된 매너스 오도늘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콘 오닐은 제럴드 피츠제럴드의 친척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오닐가, 오도늘가, 투먼드의 오브라이언가, 그리고 다른 유력한 씨족들을 묶는 연맹체인 제럴드 동맹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동맹의 첫번째 목적은 제럴드를 킬데어 백작으로 복귀시키는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아일랜드에 대한 잉글랜드의 지배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1539년 8월 매너스 오도늘과 콘 오닐은 모니건의 벨러 호에서 잉글랜드에서 파견된 총독에게 크게 패했다. 서부에서 매너스는 오도늘 가문이 북부 코노트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고 계속 주장하고 1539년 그곳의 오코노어 슬리고에게 자신이 종주권자임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1542년 잉글랜드로 가서 콘 오닐과 다른 아일랜드인 족장들과 함께 헨리 8세를 알현했다. 말년에 그는 아들 칼바에게 시달림을 받았다. 칼바는 1555년 아버지를 투옥하고 티코늘에서 누렸던 모든 권위를 박탈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