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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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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67/268 |
국적 | 팔미라 |
요약
지금의 시리아에 있던 로마 식민지 팔미라의 군주.
Odaenathus는 Odenathus, Odainath라고도 씀.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로마 제국의 동부 속주를 정복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팔미라의 통치 가문 출신인 오다이나투스는 로마의 시민이었고 258년경 콘술(집정관)의 지위를 얻어 팔미라의 통치자가 되었다.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산 왕조의 샤푸르 1세에게 사로잡혔을 때(260), 오다이나투스는 사산 왕조의 팔미라 지배를 막기 위해 로마에 계속 충성했다. 260년 안티오크를 약탈하고 돌아오던 샤푸르의 군대를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에메사(지금의 시리아 홈스)에서 제위 찬탈자 퀴에투스를 격파해 발레리아누스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갈리에누스에게서 '온 동방의 통치자'(corrector totius Orientis)라는 칭호를 받았다.
오다이나투스 스스로는 자신을 팔미라의 왕이라 칭했으며, 나중에는 '왕 중의 왕'이라고 불렀다. 262년부터 그는 로마 속주인 메소포타미아와 오스로에네에서 페르시아인들을 몰아냈으며, 아르메니아를 로마 제국 영토로 복원시켰던 것 같다. 사산 왕조의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동방에서 로마의 지배를 회복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오다이나투스는 로마 속주인 소아시아 동부의 카파도키아에서 고트족 침략자들을 몰아낼 준비를 하다가, 맏아들 헤로데스와 함께 암살되었다.
그가 죽은 뒤 아내 제노비아는 팔미라를 독립 왕국으로 만들었으나, 272년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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