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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10. 7. 14, 일본 빗추 구니[備中國 : 지금의 오카야마 현(岡山縣)] 아시모리[足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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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63. 6. 10, 에도[江戶 : 지금의 도쿄] |
국적 | 일본 |
요약 일본 에도 시대 후기에 활동한 란가쿠[蘭學] 학자·의학자·교육자.
1836년부터 약 2년 동안 나가사키[長崎]로 수학하면서 아오키 슈히쓰[靑木周弼], 이토 난요[伊藤南洋]와 함께 M. W. 플라헤의 약학 서적을 번역하여 각광을 받았다.
1838년 오사카에서는 란가쿠 학교인 데키주쿠[適塾]를 열었다. 처음에는 의학과 란가쿠를 동시에 가르쳤으나 학생이 점차 많아지면서 란가쿠 전문의 학교 성격이 강해지고 자주적·개방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 학교에서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전후 일본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하시모토 사나이[橋本左內], 미쓰쿠리 슈헤이[箕作秋坪] 등 유능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의사·의학자로서 계속 활약하여 1849년 나가사키에서 우두(牛痘)가 도입되자 오사카를 중심으로 종두(種痘) 보급에 힘썼으며, 1858년 여름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유행하자 그 진료에 힘썼다. 병리학 소개도 계속하여 1849년 〈병학통론 病學通論〉(3권)을 간행했다. 고안의 평판이 높아지자 1862년 바쿠후[幕府]는 그를 에도로 불러 쇼군[將軍]의 주치의이자 서양의학소 소장에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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