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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예족과 맥족이라는 두 종족의 복합 명칭인지, 또는 예맥이라는 종족의 단일 명칭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예·맥·예맥의 상호관계와 종족계통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크게 예맥동종설과 예맥이종설로 나누어진다.
예맥동종설은 일찍이 정약용에 의해 주장되어 윤무병 등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중국의 링춘성과 일본의 미지나 등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제시했다. 정약용은 〈강역고〉에서 맥은 종족명으로, 예는 지역이나 강의 이름으로 보아, 예맥을 9갈래로 나누어져 있던 맥족의 한 갈래로 해석했다. 예맥이 분포지역에 따라 구분되는, 예와 맥이라는 동일종족의 2갈래를 통칭한 것이라는 견해는 루이이푸·김정배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예맥이종설은 미카미·이옥 등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미카미는 예족을 빗살무늬토기 문화를 영위했던 종족으로, 맥족을 무늬없는토기 문화를 영위했던 종족으로 이해했다.
최근에는 늦어도 BC 2세기 단계의 예와 맥이 기본적으로 상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은 같은 계통의 종족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예족과 맥족이라는 두 종족의 복합 명칭인지, 또는 예맥이라는 종족의 단일 명칭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예·맥·예맥의 상호관계와 종족계통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크게 예맥동종설과 예맥이종설로 나누어진다.
예맥동종설은 일찍이 조선시대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에 의해 주장되어 윤무병(尹武炳) 등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중국의 링춘성[凌純聲]과 일본의 미지나[三品彰英] 등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제시했다. 정약용은 〈강역고 疆域考〉에서 맥은 종족명으로, 예는 지역이나 강의 이름으로 보아, 예맥을 9갈래로 나누어져 있던 맥족의 한 갈래로 해석했다. 윤무병은 예맥이란 맥족인 고구려가 예족의 일파임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았다.
미지나는 예맥을 고구려·부여·동예를 포괄하는 민족명인 예와, 중국 북방족에 대한 범칭인 맥이 결합하여 성립한 용어로 이해했다. 예맥이 분포지역에 따라 구분되는, 예와 맥이라는 동일종족의 2갈래를 통칭한 것이라는 견해는 루이이푸[芮逸夫]·김정배(金貞培)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중국의 루이이푸는 예족이 한반도 중북부와 쑹화 강[松花江], 지린[吉林], 넌장 강[嫩江] 일대에 분포했고, 맥족은 산둥[山東], 랴오둥[遼東], 보하이 만[渤海灣] 연안에 거주하던 같은 계통의 다른 갈래로 보았으며, 김정배도 이와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예맥이종설은 미카미[三上次男]·이옥(李玉) 등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미카미는 예족을 빗살무늬토기 문화를 기반으로 수렵·어로에 종사했던 고아시아계통의 종족으로, 맥족을 무늬없는토기 문화를 영위했던 퉁구스계 종족으로 이해했다. 그의 견해는 근래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의 축적을 통해 빗살무늬토기 문화와 무늬없는토기 문화의 시대가 거의 동시에 존재했음이 증명되면서 부정되었다. 이옥은 본래 예와 맥이 중국의 산시 성[山西省]과 허베이 성[河北省] 일대에 거주하다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후에 새로운 종족인 예맥이 되었다고 보았다. 즉 예와 맥 가운데 예족이 먼저 동으로 옮겨가 만주의 창춘[長春]·눙안[農安] 일대에 정착했으나, 뒤에 이 방면으로 이동한 맥족에 밀려 BC 3세기경 남쪽의 랴오둥방면으로 이동했다가 그 일부가 맥족에 흡수되어 새로운 종족인 예맥, 곧 고구려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옥의 견해 역시 문헌사료나 고고학적 자료의 뒷받침이 없이 가설적 형태로만 제시되어 학계의 통설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늦어도 BC 2세기 단계의 예와 맥이 기본적으로 상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은 같은 계통의 종족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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