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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근대시대 병기·형구·선박·차량의 제작이나 토목·건축 등에 사용한 척도.
그 이전에는 고구려척을 썼으나 조선 초기부터 명나라에서 수입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62년 남대문을 수리할 때 옥개적심에서 발견된 종보고재와 사태고재의 길이를 조사한 결과 태조 때의 영조척은 1척이 32.21㎝였다. 1422년(세종 4)에는 1척을 32.08㎝로 줄였고 다시 1440년에 명의 표준 영조척을 가져다가 31.24㎝로 개정했다.
이후 영조척의 길이는 계속 축소되어, 성종 때에는 31.19㎝로, 광해군 때에는 31.07㎝로 줄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같은 시기에 다른 길이의 영조척이 사용되어 매우 문란해졌다. 특히 영조척은 두승과 같은 계량기를 만드는 기준척이어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1446년에 각종 척도를 동으로 주조하여 각 관부와 사고에 나누어주어 보관하게 했다.
척도의 제작·관리·보급은 세종 때의 기준에 맞추어 공조에서 원기를 제작하여 낙인을 찍어 각 도와 관사에 반포했고 매년 가을에 이를 다시 검사하게 했다.
임진왜란으로 이 척도가 분실·파괴되어 없어졌다가 삼척부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포백척을 기준으로 다시 만들었다. 현재 영조 때의 것이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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