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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능.
사적 제195호.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원래 영릉은 소헌왕후가 죽은 1446년(세종 28) 광주 헌릉 서쪽에 조성하여 그 우실(右室)을 왕의 수릉(壽陵)으로 삼았다가 1450년 왕이 죽자 합장했다.
이 능은 〈국조오례의 國祖五禮儀〉 치장조(治葬條)를 따른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능의 석물은 병석에서 영저(靈杵)·영탁(靈鐸)·지초문양(芝草紋樣)을 배제하고 구름문양과 12지신상만 조각해 조선병석문(朝鮮屛石紋)의 기본을 확정했으며, 혼유석(魂遊石)의 고석(鼓石)을 5개에서 4개로 줄이는 등 제도상 고친 것이 약간 있었다.
세조 때 이 영릉이 불길하다는 의논이 대두했으나 서거정(徐居正)이 "천장(遷葬)함은 복을 얻기 위함인데 왕자가 다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라고 반대하여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 여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는 세조의 유언으로 병석과 석실의 제도를 폐지하고 회격(灰隔)으로 합장했다. 능 앞에 혼유석 2좌를 놓아 양위(兩位)임을 표시했을 뿐 상설제도는 단릉(單陵)과 같다.
광릉(光陵)에는 동자석주(童子石柱)에 12지신상을 표시했는데 이보다 1년 후에 천릉한 영릉에서는 12지(支)를 문자로 기록했고, 그 이후에는 난간에 24방위까지 넣은 새로운 왕릉상설제도를 이루었다. 광주에 세워졌던 신도비는 능을 옮길 때 땅에 묻었던 것을 1974년에 발굴해 세종대왕기념관 앞뜰에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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