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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평안남도 강서군 태성리(옛 지명은 학재면 간성리)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
1912년 우현리의 강서3묘와 함께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당시의 명칭은 간성리고분 또는 간성리연화총이었다.
얕은 구릉의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어 무덤의 앞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내려다보인다. 널길[羨道]과 4개의 감실이 달린 장방형 앞방[前室], 용도, 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두방[二室]의 석실봉토분으로 묘실의 방향은 남향이다. 앞방의 좌우 양끝과 안벽 좌우에 각 1개씩의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감실이 달린 이러한 앞방 형태는 안악3호분의 앞방과 구조상 유사하다. 널방 천장은 3단의 평행굄 위에 2단의 3각굄을 얹은 평행3각굄이다. 앞방과 4개의 감실은 화강암 막돌로 쌓은 반면 널방벽은 크고 작은 안산암 막돌로 쌓았으며 널방 천장은 화강암 판석으로 짰다.
묘실 내부 전면에 걸쳐 백회를 입히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렸으나 백회의 대부분이 떨어져나가 벽화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곳은 극히 일부분이다. 벽화의 주제는 인물풍속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방과 널방의 각 벽 모서리에는 붉은색 물감으로 나무기둥과 주두, 2중두공, 굽받침소로, 들보 등이 그려진 흔적이 있어 내부를 목조건물의 실내처럼 느끼게 장식했음을 알 수 있다. 널방 앞벽 윗면에는 희미한 들보 위로 '∧'형 활개가 뚜렷이 남아 있다.
앞방 안벽 오른편에 달린 감실의 서벽에는 둥근 무늬의 술로 장식된 장방 아래로 오른편을 향하여 긴 소맷자락을 모아 읍(揖)한 자세의 인물 얼굴과 상체 일부가 보인다. 앞방 남벽에는 기마행렬도의 일부가 남아 있다. 3칸으로 이루어진 앞방 천장의 각 뚜껑돌 밑면에는 활짝 핀 9엽 4겹의 연꽃이 1송이씩 그려졌으나 오른편 끝칸의 것만 형태가 뚜렷하며 다른 것은 거의 알아보기 어렵다. 널방 앞벽 윗면의 붉은색 들보 위에 그려진 '∧'형 활개들 사이의 공간에는 봉황·기린·천인 등이 표현되었다. 활개 사이의 공간에 이러한 존재들을 그린 벽화고분으로는 안악2호분·천왕지신총·용강대묘 등을 들 수 있다.
널방 천장부의 3각굄석 밑면에는 팔랑개비무늬의 원문과 원안의 세발까마귀[三足烏]로 상징되는 해, 봉황류의 서조를 그렸다. 널방 천장 뚜껑돌 밑면에는 커다란 연꽃을 그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옆방[側室]이 퇴화한 단계의 장방형 앞방과 전형적인 평행3각굄으로 처리된 널방 천장을 지닌 묘실구조, 목조건물의 내부처럼 장식된 묘실, 화려하면서도 실물적 표현을 간직한 연꽃무늬 등의 요소를 고려할 때, 연화총의 축조 및 벽화제작 시기는 5세기 전반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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