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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과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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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연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출이나 연기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연출가가 공연에서 큰 힘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였으나, 배우를 지도하는 연출가의 역할은 기원전 그리스 극의 공연에서부터 있어왔다. 사실 가장 숙련된 배우가 다른 동료 배우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한 배우가 다른 배우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극중 역할을 맡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타당하고 총체적인 조언을 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무대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분업화는 공연 전체를 조정하는 자로서의 연출가를 더욱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현대적 의미의 연출가는 1860년 독일 작센 마이닝겐 공작 게오르크 2세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인물을 창조하는 데 심리적 깊이를 부여하고자 노력했으며, 특히 배경과 군중장면을 처리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연출가의 일관된 관점으로 공연을 조화시키려 했던 작센 마이닝겐의 연출가 개념은 프랑스 자유극장(Théâtre-Libre)을 설립한 앙드레 앙투안(1858~1943)과 러시아의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1863~1938)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연출 기술은 20세기에 들어와 한층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연출가는 공연 양식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을 해석하고, 배우들에게 배역을 맡기며, 관련자들과 협력하여 공연을 독려하고, 공연을 마무리하기까지 요구되는 모든 책임을 맡는다. 그는 배우들의 성격 창조와 연기 지도, 의상, 조명 등 무대의 온갖 효과와 기술을 자문하며, 대사와 공연의 리듬을 주시해 조절한다. 연출가는 궁극적으로 관중을 사로잡는 공연의 초점을 결정하고 실현해야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유럽과 영국에서 공연되는 전문극단의 공연은 모두 전문 연출가가 맡고 있을 만큼 오늘날 연출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연출가의 부상으로 공연에서 작품보다도 그 해석이 더 큰 비중을 갖게 된 것도 오늘날의 현상이다.

연출가의 출신 배경이나 개성 등에 따라서 각기 다른 연출 방식이 창출된다. 근대의 유명한 몇몇 연출가를 꼽아보면, 우선 20세기초의 라인하르트(1873~1943)와 스타니슬라프스키를 들 수 있다.

라인하르트는 사실주의 연극에서 출발했으나 각 작품에 맞는 폭넓은 연출 양식을 구사했다.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을 강조하고 무대표현에 독특한 방법을 구사했던 그는 양식성(stylization)과 극장성(theatricality)이 뛰어난 연출가였다. 그가 연출한 〈오이디푸스 왕 Oedipus〉의 서커스 무대나 〈기적 The Miracle〉의 스펙터클한 무대는 유명하다. 스타니슬라프스키는 극작가 안톤 체호프와 함께 뛰어난 연출가로 꼽힌다. 그는 유럽의 소극장운동이 추구했던 사실주의 연출기법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연기훈련법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앙토냉 아르토는 당대에는 소외되었으나, 현대 아방가르드 연극의 선구자이며 새로운 연출의 실험가였다. 그는 기존의 서양연극이 의식의 세계와 일정한 문화에 국한되어 있다고 비판했고, 연극이야말로 적절한 경험을 통해 의식과 문명에 억눌렸던 인간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연극을 잔혹극(Theatre de la cruauté)이라고 불렀는데, 충격적인 효과를 사용하여 그 충격으로 내부를 직시함으로써 도덕적·정신적 정화를 꾀했다. 공연장도 그당시까지 사용되었던 극장보다 헛간이나 공장을 선택했고 전율적인 조명, 귀에 거슬릴 정도로 날카로운 음향을 사용했다. 아르토의 이론은 현대, 특히 1960년대 아방가르드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사극'을 주창했다(브레히트). 서사극이란 아르토와는 또다른, 종래 서양의 연출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연극의 전통적인 감정교류나 동화 혹은 카타르시스를 거부하고, 극에서의 이성과 판단을 앞세웠다. 이를 위하여 그는 관객이 공연에 너무 몰입하면 이성적 판단이 어려워지므로 공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소외효과를 주장했다. 이 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이입이나 동화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자막표시나 노래, 또는 조명기의 노출 등 전체적인 흐름을 단절시키는 장치가 고안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의 연극이 카타르시스 효과를 추구했던 만큼, 이를 배격한 소외효과는 획기적 사고의 전환이었다.

20세기 프랑스의 연출가 루이 주베는 연출가를 2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한 부류는 희곡을 기본으로 하여 희곡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는 연출가이고, 다른 부류는 희곡을 떠나서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연출가이다. 후자의 경향은 점차 더욱 두드러져서 20세기 후반에는 이들이 창의적 연출가로 떠올랐다. 이는 공연성에 대한 강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피터 브룩을 이러한 유의 대표적인 연출가로 꼽을 수 있는데, 그의 셰익스피어 극의 재창조는 유명하다.

그는 고전에서 전위연극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해석과 폭넓은 실험으로 절찬을 받았다. 또한 예지 그로토프스키는 무대를 되도록 간소화한 '가난한 연극'을 주창하기도 했다.

한편 20세기 후반 또 하나의 연극계 특징은 국제성이다. 편리한 여러 교통수단의 발달로 서양의 관객까지 동양 전통극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 일방적으로 서양연극이 동양으로 유입되었던 것과는 달리 동양연극이 서양연극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동양전통극의 독특한 기법들은 서양연극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연출가와 배우의 이상적인 관계는, 연출가가 배우 스스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연출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배우를 기계적인 대상으로 보기도 하나 이는 특수한 경우이다. 배우들과의 충분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연출가의 객관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또한 연출가는 배우들에게 완전히 자유롭다는 꿈을 주는 동시에 이들 각자를 조화·통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연기란 연극의 내용을 관객 앞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몸짓이나 음성으로 하는 동작으로서 일상생활의 행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연기는 흔히 단순한 모방이나 자기를 나타내보이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상상으로 떠오르는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에서 그 본질을 찾아보아야 하며, 이에 따라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지성'이 요구된다. 연기에서 음성·발음·몸짓 등의 외면적인 기술과, 배우 내면의 감정의 발로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는가 하는 문제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계속 제기되어왔다.

연기는 한편으로는 배우의 정확하고 조직적인 표현의 체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발로이다.

효과적인 연기를 위해서는 배우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흉내를 내야 하는가,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배우 스스로가 진정으로 느껴야 하는가, 자연스럽게 말해야 하는가, 또는 과장해서 말해야 하는가,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등등의 연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기본적 명제는 연기가 생기면서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기란 "음성조절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 했고, "연기 능력이란 타고난 것이며 가르치기 힘들지만 좋은 발성법은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연기가 곧 발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연기를 좀더 복합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좋은 연기는 배역에 대한 본능적인 감지와 광적인 열정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전자에 의하여 인간은 모든 역할을 모방할 수 있으며, 후자에 의하여 인간이 상상하는 역할에 진정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드니 디드로의 〈연기의 패러독스 Paradox of Acting〉는 연기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인 논의였다.

디드로는 배우가 관중을 감동시키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배우 스스로는 감정적인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결론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겠으나, 디드로는 성공적으로 배우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제시했다. 그는 배역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느끼는 배우가 어떻게 같은 역할을 매번 성공리에 되풀이할 수 있을지를 의문시했다.

그는 연기가 고르지 못한 배우는 역할인물의 감정을 스스로 느끼는 배우임에 주목하고, 배우가 어떻게 연기중에 역할 인물만을 행하고 자신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는 공연의 객관적인 조화 내지 통일성을 강조했으나,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발달시키기 위한 연기술은 제시하지 못했다. 연기술의 어려움은 19세기 프랑스 델사르트의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본능이나 감정의 영향을 받아 육체는 기존 연기술에서 말해오던 바와는 상당히 다른 태도와 동작을 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찰과 연구로 그는 독자적인 화법과 행동의 원칙을 제시했으나 이것 역시 기존의 연기술처럼 기계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연기술의 이론화는 20세기초 스타니슬라프스키에 의해 큰 진전을 보았다. 그는 디드로나 다른 연구가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영감과 자발적 행위의 순간들을 재현하려는 문제에 도전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연출을 하면서 그는 성격 창조가 무의식적이나마 배우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억이나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잊혀지고 차츰 기계적으로 반복된다고 생각했으며, 창의적인 연기를 위해서는 '창조적인 분위기'가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천재적인 배우일수록 이러한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오래도록 지속하나 아무도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이 '창조적인 분위기'를 조절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현대 연기술의 서장을 열었다.

그는 연기의 영감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얻으려 한 것이 아니라, 영감을 얻기 좋은 분위기를 어떻게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그리고 다른 예술가는 별개로 치더라도 배우만은 자신의 영감을 조절하고 필요할 때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배우가 무의식적인 창조력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면 배우는 무대 장치나 테크닉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그는 '감정적 기억'을 주장했다.

감정적 기억이란 긍정적 반응이든 부정적 반응이든 지난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이다. 무엇이든 아픔을 유발했던 것은 이후에 자동적으로 불쾌함을 느끼게 한다. 기억해서라기보다는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이 불쾌감은 지난 경험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적 기억은 지난 경험과 유사한 다른 경험에도 나타날 수 있다. 바로 이 기억에 의해 배우는 무대에서 반복되는 가상의 행동에 반응하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 이 이론은 '스타니슬라프스키 방식'으로 종합된다(스타니슬라프스키 방식). 스타니슬라프스키는 배우의 내면적 정당화나 상상적 가상 등을 통해 감정적 기억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스타니슬라프스키 이론은 리 스트래스버그에 의해 미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현대 연기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양 연기술의 근간을 이룬 사람으로는 아르토·브레히트·그로토프스키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연출이론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아르토는 연기를 심리적이라기보다는 육체적인 것으로 보았다.

어떤 감정이나 어떤 행동도 결국은 호흡의 지배 아래 있으며, 호흡조절로 조정된다. 따라서 배우를 심장의 운동가로 간주했다. 이 이론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내면적 진실과 대조적으로 연기에는 외면적 진실이 있음을 환기시켰다. 브레히트도 1950년대 베를리너 앙상블의 뛰어난 공연을 통해 스타니슬라프스키 이론에 반대되는 연기술을 전개했다. 스타니슬라프스키 연기술에 따르면 배우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반면, 브레히트의 연기술에서는 배우가 각 배역의 계층을 대표하며 어떤 경우에는 거의 비인간화되기까지 한다.

서사적 리얼리즘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소외효과라는 특수한 연기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 상황을 냉정히 보고, 판단하게 하기 위한 개념이다. 배우는 맡은 역으로 변신하기를 포기하고, 배우와 언어는 맡은 역과 거리를 유지한다. 따라서 배우는 마치 인용하듯이 대사를 말하고 맡은 역을 그럴 듯하게 해내는 동시에 그 역에 대해 논평할 수 있어야 한다. 브레히트 자신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이론에 반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있다고 밝혔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연기술은 현대 연기를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로토프스키는 1960, 1970년대에 '폴란드 실험실 극단'을 주도하면서 '가난한 연극'을 주창했다.

그는 스타니슬라프스키나 브레히트의 이론 모두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들을 종합한 새로운 연기술을 시도했다. 그는 연극은 텔레비전이나 영화같이 흥미나 효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배우와 관객과의 살아 있는 관계에서 연극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배우는 연극의 핵심에 놓이며 신체와 음성 훈련으로 몰아의 경지에 이르도록 집중도를 높여야 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상에 있는 소리와 동작으로, 배우들은 각기 자신만의 심리분석적인 소리와 동작의 표현언어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내부적 충동과 외부적 반응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배우에게 자유를 부여하고자 했다.

동양의 연기술은 연극의 종류마다 특이하며 전문적이다. 대부분의 동양연극에서는 혈연 집단을 중심으로 한 배우가 한 역할만을 평생 수련하여 고도의 연기력을 갖춘다. 연기술은 도제형식으로 비전되었고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의 산스크리트 연극의 〈나티아 샤스트라 Nātya-śāstra〉와 일본 노[能]의 〈후시카덴 風姿花傳〉은 연극의 기본인 연기·연출 미학서로 명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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