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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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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52년 3월 당시 소장 역사연구자들이 역사학 전반의 연구·발전을 목적으로 창립한 학회.

일제강점기의 문헌고증사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식민주의사학에 대한 비판의식과 반일의식,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 사회과학 방법론에 기반하여 연구성과를 축적하면서 최대의 사학회로 자리잡았다. 8·15해방 후 1947년 이순복(李洵馥)·한우근(韓이미지劤)·손보기(孫寶基)·김철준(金哲埈) 등이 역사과학연구소를 창립하여 역사연구의 발전을 도모했으나, 이순복이 사망함으로써 곧 해체되었다.

6·25전쟁중인 1952년 3월 1일 부산의 서울문리대 임시교정에서 전사편찬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던 한국사의 한우근·김철준·천관우, 동양사의 고병익·전해종·정병학, 서양사의 민석홍·이보형(李普珩)·안정모(安貞模) 등이 역사학 연구학회의 창립 발기회를 가졌다. 창립목적을, 역사학의 재건을 위해 각지에 산재한 동학의 사(士)를 규합하고, 학문적 정열과 과학적 방법을 구사하여 국내의 공고한 결속과 국제적 광범한 제휴를 할 것으로 규정했다. 초대회장은 홍이섭, 고문은 이병도·김상기(金庠基)·백낙준·조의설(趙義卨) 등이 맡았다.

처음에는 동인회 성격이 짙었으나, 1957년 손보기·김원룡(金元龍)·이광린(李光麟)·최영희(崔永禧)·이기백(李基白)·이우성(李佑成)·강진철 등이 대거 참여하면서 각 도시에 분회를 둔 전국적 사학회로 확대되었고 운영도 대표간사제로 바뀌었다. 1978년 대표간사제에서 회장제로 다시 바뀌었다. 1958년 진단학회와 공동발기로 전국역사학대회를 처음 개최하여 국내외 학회와의 교류를 정례화했다. 1992년 현재 국내외 회원수는 920여 명이며, 조직은 회원·임원회·평의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기관지로 계간지 〈역사학보〉를 1952년 3월부터 발간하여 1992년 3월 현재 133호까지 발간하고 있다. 월례연구발표회 개최, 국내외 학회와의 연락제휴 등의 활동을 꾸준히 계속하는 한편, 〈실학연구입문〉(1973)·〈한국사자료선집〉(6권, 1975~76)·〈한국사논문선집〉(6권, 1976)·〈동양사논문선집〉(2권, 1978)·〈서양사논문선집〉(2권, 1978)·〈과거〉(1981)·〈현대한국역사학의 동향〉(1982)·〈현대한국역사학논저목록〉(1983)·〈한국사의 반성〉(1983)·〈일본의 침략정책사연구〉(1984)·〈한국고대의 국가와 사회〉(1985)·〈한국근대민족주의운동사연구〉(1987)·〈한국친족제연구〉(1992) 등의 공동성과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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