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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315경, 팔레스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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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403. 5, 해상 |
국적 | 살리미스 |
요약 축일은 5월 12일.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이단이라고 판단한 신조들에 맞서 싸운 것으로 유명한 주교.
주로 동방교회의 대(大)신학자 오리게네스의 가르침에 대항했다. 오리게네스를 그리스도교도보다는 그리스 철학자에 가깝다고 생각하여 심하게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갖고 있던 원칙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이집트에서 수도원제도를 연구하고 실습한 뒤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엘레우테로폴리스 근처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원장이 되었다. 367년 키프로스 콘스탄티아(살라미스)의 주교가 되어, 평생 그 직위에 있으면서 수도원제도를 전하고 이단 반대운동을 벌였다. 그의 정통적인 견해들은 아리우스주의를 받아들인 동로마 황제 발렌스(364~378 재위)의 견해와 대치되었으나, 민중이 에피파니오의 고결함을 존경했기에 보호를 받았다. 403년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를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갔는데,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오리게네스와 동일한 견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당한 수사 4명을 숨겨주었다고 고소당한 적이 있었다. 이 고소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루스의 고소들(그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가 파면되기를 바랐음)이 사실무근임을 확신한 에피파니오는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가다가 죽었다.
에피파니오는 열정적인 주교이자 민중의 존경을 받던 금욕주의자였지만 절제력과 판단력이 부족했다. 이 결점들은 그의 저서들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주요저작으로, 그리스 철학 학파들, 유대교 종파들, 사마리아 종파를 포함한 80개의 이단설을 다룬 뒤 정통신앙 교리를 진술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Panarion〉(374~377)과, 교회의 가르침들에 관한 해설집 〈Ancoratus〉(374)가 있다. 그의 저서들은 신학사상사의 자료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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