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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 3. 20, 미국 워싱턴 타코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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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9. 2. 14, 조지아 애틀랜타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정치인·변호사.
리처드 M. 닉슨 미국 대통령의 내무담당 보좌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유명해졌다. 그는 음모, 사법 방해, 위증죄로 기소되어 18개월을 복역했다.
워싱턴과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한 에일리크먼은 여러 직업을 전전한 뒤 1943년 미육군항공대에 입대하여 1945년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 1948년에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를 졸업했고, 1951년에는 스탠퍼드대학교(캘리포니아 스탠퍼드 소재)에서 법학학위를 받은 뒤 시애틀에서 법률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1960년 대통령 선거와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2차례 닉슨을 위해 선거 운동을 했으나 실패했으며,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 전략을 맡아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1969년에 백악관에 들어간 그는 처음에 자문역을 맡았다가 이후 닉슨 대통령의 내무담당 보좌관으로 임명되었으며, H. R. 홀더먼과 함께 이른바 닉슨의 '측근'이 되어 대통령을 국민과 정부관리들로부터 고립시켰다. 또한 이 두 사람은 대통령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했고 모든 정부부서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여과시켰다. 이 두 사람은 대통령을 외부와 차단시키려 했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Berlin Wall)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에일리크먼은 또한 '배관공들'(plumbers)로 알려진 집단을 구성해 정보의 누출을 막고 정치 정보를 입수했다.
이 배관공들은 1972년 6월 17일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복합건물에 위치한 민주당(Democratic Party) 전국위원회 본부에서 침입했다가 체포되었다. 처음에 에일리크먼은 백악관의 개입을 자백하기로 결심한 듯했으나 나중에는 사건의 은폐에 적극 가담했다. 1973년 4월 결국 닉슨 및 그의 측근들과 함께 자신의 공모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자 에일리크먼은 사임했고, 닉슨 또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그는 재판에 회부되었고 고무·위증·재판방해 혐의로 기소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8개월을 복역한 뒤 1978년 4월에 석방되었다. 그는 법조계에서 영구 추방당했고 뉴멕시코 주 샌타페이로 거처를 옮겨 집필과 강연 활동을 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동료 The Company〉(1976)와 대통령 보좌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회상록 〈권력의 증인: 닉슨 시대 Witness to Power: The Nixon Years〉(1982) 등이 있다. 나중에 에일리크먼은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위험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중역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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