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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7, 오스트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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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3. 5. 21, 잉글랜드 하트퍼드셔 하펀던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육군 장교.
드레퓌스 사건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 에스테라지는 백작으로 가장하여 오스트리아가 1866년에 프로이센과 싸울 때 오스트리아 군대에서 복무했다. 그후 프랑스 외인부대에 들어갔다가 1892년 정규군 장교로 임관했다. 1894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에스테라지는 프랑스 육군의 '통계부'(육군의 대적[對敵] 정보기관의 위장명칭) 부장인 조르주 피카르트 중령으로부터 의심받게 되었다.
피카르트 중령은 드레퓌스가 썼다는 반역적인 문서에서 에스테라지의 필적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에스테라지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드레퓌스 사건 재심 요구가 끈질기게 계속되어 지지자들을 얻게 되었고,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겁이 난 에스테라지는 벨기에로 도망쳤다가 다시 런던으로 건너갔다. 에스테라지는 자신의 행동을 변명한 글에서 자신이 독일 첩자였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그는 '부알몽 백작'이라는 가명으로 번역가 겸 작가로 일했고, 행상으로 생계를 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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