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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포르투갈 중남부 에부라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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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57,576명 (2020년 추계) |
면적 | 1,307.08㎢ |
언어 | 포르투갈어 |
대륙 | 유럽 |
국가 | 포르투갈 |
요약 포르투갈 중남부 에부라 주의 주도이자 자치구역.
리스본 동쪽 110㎞, 나지막한 구릉지대가 둘러싸고 있는 비옥한 골짜기 안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의 지명은 에보라(Ebora)였으며 BC 80~72년에 로마의 장군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의 본부였으며 그후로도 오랫동안 로마의 주요 군사 중심지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자치권을 부여한 일을 기념하여 리베라리타스율리아라고도 불렸다.
712년경 무어인들이 점령한 후 자부라라고 불렸는데 1166년에 그리스도교도들이 되찾았다. 5세기에 주교관구가 되었으며 포르투갈의 왕들이 자주 머물던 16세기에는 대주교구관구로 승격되었다. 1663~65년에는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다. 1832년 포르투갈의 왕위를 노리던 돔 미겔이 돔 페드루 1세에게 패하여 이곳으로 도피했지만 이곳에서 조인된 에부라 헌장에 따라 추방당했다.
수세기 동안 전쟁을 치른 곳으로 사람의 잘린 머리 2개를 새긴 문장이 있다.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1186~1204)이었던 대성당은 1400년경 고딕 양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상프란시스쿠 교회(1507~25)는 무어 양식과 고딕 양식의 혼합 형식인 마누엘리네로 지어진 대표적 건물이다.
예수회가 설립한 성령대학(1551)의 뒤를 잇기 위하여 1559년에 세워진 옛 대학교는 1759년에 탄압을 받았으나 그 건물에는 아직도 학교들이 들어 있다. 옛날에 로이우스 수녀원(15세기)이 있던 곳에 포사다두스로이우스라는 국영 여관이 세워졌다. 여관 바로 바깥에는 자그마한 로마 시대의 디아나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의 이름에 대한 근거있는 주장은 없다. 이곳 박물관에는 로마 시대의 유물들과 미술관이 들어 있다. 1640년 이후 대성당 및 대학교와 관련하여 음악 연구와 연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3년 에부라대학교가 설립되었다.
공업은 거의 행해지지 않으며 농축산물(옥수수·사과·건초·돼지)의 유통 중심지로서 중요하지만 주철 공장, 코르크 가공공장, 의복제조 공장도 있다. 철도와 도로를 통해 리스본·파루·스페인과 연결되어 있으며 국내선 공항이 있다.
에부라 주는 노새로 유명하고 코르크 나무가 많다. 비옥한 농업지역이며 철광석·동·석면 광산 및 대리석 채석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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