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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액막이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미신에 불과하지만, 병과 재난에 대해 뚜렷한 대책이 없던 시기에는 일종의 신앙이자 심리적 위안을 주는 행위였다. 한국에서는 액막이가 주로 절기에 따라 행해졌다. 조선시대의 궁중에서는 설날에 문배라고 하여 금갑이장군상을 대궐문 양쪽에 붙였다. 민간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해에 3재가 든 사람은 머리가 셋이고 몸뚱이가 하나인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였다. 이때 3재란 수재·화재·풍재 또는 병난·질역·기근을 가리킨다. 5월 5일 단오에는 여자들이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두통을 앓지 않는다 하여 창포뿌리를 깎아 비녀로써 머리에 꽂았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고 그것을 문짝에 뿌려 벽사한 풍속이 있었다. 또 마을 단위의 액막이로 동제가 있다.
도액(度厄)·제액(除厄)이라고도 한다.
액막이는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있는데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미신에 불과하지만, 병과 재난에 대해 뚜렷한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일종의 신앙이자 심리적으로 큰 위안을 주는 행위였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유감주술(類感呪術)을 이용하거나 악귀보다 더 강력한 상징물·색깔·냄새 등을 몸이나 몸 가까이에 두는 것으로 십자가, 각종 부적 및 신라에서 역신(疫神)을 쫓았다는 처용의 형상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또 중국에서는 새해 첫날 닭울음 소리와 함께 일어나 폭죽을 터뜨려 악귀를 쫓는 일종의 청각형(聽覺型) 액막이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액막이가 주로 절기에 따라 행해졌는데,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에 많이 몰려 있다.
조선시대의 궁중에서는 설날에 문배(門排)라고 하여 금갑이장군상(金甲二將軍像)을 대궐문 양쪽에 붙였으며, 또 종규(鍾馗)가 귀신 잡는 상과 귀두(鬼頭) 모양을 문과 중방에 붙여 액과 돌림병을 물리쳤다. 민간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쳤으며, 금줄을 치고 체를 마루벽이나 뜰에 걸어서 초하룻날 밤에 내려오는 야광귀(夜光鬼)를 물리쳤다. 그리고 그해에 3재(三災)가 든 사람은 머리가 셋이고 몸뚱이가 하나인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였는데, 이때 3재란 수재(水災)·화재(火災)·풍재(風災) 또는 병난(兵難)·질역(疾疫)·기근(飢饉)을 가리킨다.
나쁜 병을 물리치기 위해 설날에 지난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황혼녁에 문밖에서 태우는 소발(燒髮) 액막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나이가 제웅직성(直星)에 들면(남자 10세, 여자 11세) 정월 14일에 제웅 안에 돈과 성명, 출생년의 간지(干支)가 적힌 종이를 넣어 길가에 버림으로써 그해의 액을 막았다. 또 아이들은 청색·홍색·황색 등을 칠한 3개의 호로(葫蘆 : 호리병박)를 색실로 끈을 만들어 차고 다니다가 이날 밤에 길가에 몰래 버려 액을 막았다.
정월 15일에는 '액',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을 쓴 액연(厄鳶)을 띄워 놀다가 저녁 무렵에 줄을 끊어서 그해의 재액을 막았다(대보름). 5월 5일 단오에는 여자들이 창포(菖蒲)물로 머리를 감고, 두통을 앓지 않는다 하여 창포뿌리를 깎아 비녀로써 머리에 꽂았는데, 더러는 수복(壽福)을 기원하고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그 비녀에 '壽'자나 '福'자를 새기고 끝에 연지를 발랐다.
상류층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든, 주사(朱砂)로 박은 천중적부(天中赤符 : 또는 端午符)를 문설주에 붙여 재액을 막았다. 6월 15일 유두의 액막이에 관해서는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경주의 유속(遺俗)에 의하면 6월 보름날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가서 머리를 감아 불상(不祥)한 것을 씻어버린다. 그리고 액막이로 모여 마시는 술자리, 즉 계음을 유두연(流頭宴)이라 했으니 국속(國俗)에는 이로 인하여 유두라는 속절(俗節)이 생겼다." 또 이날 밀가루로 구슬 모양의 유두면(流頭麵)을 만들어 먹거나, 오색실로 유두면을 꿰어 차고 다님으로써 액막이를 했다.
6월 이후의 액막이로 두드러진 것은 동짓날에 팥죽을 먹고 그것을 문짝에 뿌려 벽사한 풍속을 들 수 있다. 또 마을 단위의 액막이로 동제(洞祭)가 있다. 액막이의 의식이 이렇게 6월 이전에 몰려 있는 것은 액막이의 예방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액막이의 주대상인 각종 질병과 전염병이 대부분 여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과학문명이 한국에 유입된 이후에 액막이는 벽사와 질병예방의 본래적 기능에서 탈피해 고유의 풍속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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