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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84. 1. 28, 에든버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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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60. 12. 14,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정치가.
Viscount of Formartine, Lord Haddo, Methlick, Traves, Kellie, Viscount Gordon of Aberdeen이라고도 함. 본명은 George Gordon.
영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크림 전쟁(1853~56)을 치를 때 외무장관과 총리(1852~55)를 지냈다.
11세 때 고아가 되어 후견인인 정치가 소(小)피트와 헨리 던대스(나중에 멜빌 자작)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1801년 할아버지의 백작작위를 상속했다. 1814년 왕을 대신해 파리 조약에 서명한 후, 세속 자작작위를 받았다. 1818년에는 죽은 아내의 결혼 전 성을 자신의 성에 덧붙였다.
웰링턴 공의 내각에서 랭커스터 공령상서(1828. 1~6)와 외무장관(1828. 6~1830. 11)을 지냈으며, 로버트 필 경이 첫번째로 총리를 지낸 짧은 기간(1834. 11~1835. 4. 1)에 육군장관 겸 식민장관을 지냈다. 필의 제2차 내각에서 다시 외무장관이 되어(1841. 9~1846. 7) 웹스터-애슈버턴 조약(1842)과 오리건 조약(1846)을 통해 캐나다와 미국 간의 동서 국경선을 둘러싼 오랜 분쟁을 해결했다.
1852년 12월 28일 필 지지파(1850년 필이 죽은 뒤 애버딘이 그 지도자로 인정됨), 휘그당, 급진파 등으로 이루어진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1853년 그의 내각은 중동문제를 둘러싸고 어쩔 수 없이 러시아와 전쟁을 치를 위기에 직면했는데, 그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클래런던 백작 4세의 평화유지 노력에 장애가 되었다. 애버딘과 클래런던이 그해 9월 23일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3개월 후 흑해로 영국 함대를 파견함에 따라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결국 1854년 3월 28일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에 돌입해야 했던 이유 가운데는 크림 반도에 있던 영국군 장성들이 정보를 잘못 전한 탓도 있지만 그 실책의 헌법상 책임은 애버딘이 져야 했기 때문에, 1855년 1월 29일 사임했다.
〈애버딘 백작 The Earl of Aberdeen〉(1893)은 유명한 식민지 총독이었던 그의 아들 스탠모 남작 1세 아서 해밀턴 고든이 쓴 것이다. 레이디 프랜시스 밸푸어는 〈애버딘 백작 4세 조지의 생애 The Life of George, Fourth Earl of Aberdeen〉(2권,1923)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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