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918. 11. 9, 미국 볼티모어 |
---|---|
사망 | 1996. 9. 17, 독일 베를린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제37대 부통령.
1968, 1972년에 공화당 대통령후보인 리처드 M. 닉슨과 함께 당선되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2번째로 높은 공직을 사임한 인물이었고(첫번째는 1832년에 부통령직을 사임한 존 C. 캘훈), 강제로 사임한 유일한 부통령이었다.
그리스 이민계 태생이었던 그는 아나그노스토풀로스라는 긴 이름을 애그뉴로 줄였다. 애그뉴는 볼티모어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1947년에 볼티모어 교외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1957년에 그는 볼티모어 군지역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되었고, 1962년 볼티모어 군(郡)행정관으로 선출되었다.
1967년 주지사에 당선된 그는 누진소득세와 강력한 반공해법을 제정하고, 메이슨-딕슨 라인(메릴랜드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의 경계선) 남쪽에서는 처음으로 주택을 팔거나 빌려줄 때 인종이나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주거개방법을 제정했으며, 메릴랜드 주에서 306년 전부터 시행되어온 흑인과 백인 간의 잡혼금지법을 폐지했다. 1968년 부통령으로 지명될 당시 그는 미국 대중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급진적인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연설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몰락은 1973년 여름에 시작되었다. 그는 메릴랜드 주지사로 재직할 당시 관련된 금품 강요와 뇌물수수 및 소득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1973년 10월 10일 연방법원에 기소되기 직전 그는 부통령직을 사임했다. 같은 날 애그뉴는 볼티모어에 있는 미국 지방법원에 출두하여 메릴랜드 주지사로 일하던 1967년에 얻은 소득 가운데 2만 9,500 달러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연방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애그뉴는 이 답변이 소득세법 위반이라는 중죄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그가 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은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선언했다. 판사는 애그뉴에게 1만 달러의 벌금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976년 부통령의 몰락을 다룬 애그뉴의 소설 〈캔필드의 결단 The Canfield Decision〉이 출판되었다. 〈조용히 떠나라……그렇지 않으면 Go Quietly……or Else〉(1980)은 그가 자신의 정치생활을 옹호하고 닉슨 행정부 관리들을 공격한 작품이다. 1974년 메릴랜드 주가 그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한 뒤, 외국 기업체의 고문이 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