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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유적

다른 표기 언어 巖寺洞遺蹟

요약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마을 유적.

사적 제267호. 1925년의 대홍수로 유물포함층이 드러나면서 토기·석기가 대량으로 채집되었으며 그뒤 여러 차례 조사가 있었으나 정식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196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조사단에 의해서였다.

유적

암사동 유적(신석기시대), 사적 제267호, 서울 강동구 암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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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는 서울대학교·경희대학교·숭전대학교·전남대학교 박물관의 연합발굴이 있었으며, 1971~7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단이 발굴하여 신석기시대 집터가 무리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적의 중요성에 따라 그 일대를 선사유적공원으로 만들어 야외전시관을 세우고 집터를 복원하는 계획이 세워짐에 따라 1983~84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다시 발굴했다.

유적은 모두 6개의 자연층위로 되어 있는데, 위로부터 겉흙층·검은모래층·짙은회색모래층·누런모래층·붉은갈색모래층이 있고 바닥은 생토층이다. 검은모래층에서는 삼국시대 백제토기와 건물자리가 나왔으며, 회색모래층에서는 민토기·돌도끼·청동화살촉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나왔다. 붉은갈색모래층은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신석기문화층으로서 유적의 주문화층이다.

이 문화층에서는 수십 기의 집터가 드러났다. 집터는 모래땅에 깊이 60~70㎝의 움을 파고 지은 반움집으로 둥근꼴이 대부분이며, 모죽임네모꼴[抹角方形]도 있다. 집터 한가운데에는 강돌을 둘러 만든 화덕시설이 있고, 집터 한쪽으로 나들이를 위한 계단을 만든 곳도 있다. 집구조는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얹어 지붕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기둥이 불탄 채로 쓰러져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집터 밖에는 저장구덩이 있고, 돌무지시설도 드러났다. 돌무지시설에는 강자갈들이 쌓여 있는데 불탄 돌과 토기 조각이 나와 토기를 굽던 한데가마[露天窯]일 가능성이 있으나 공동의 화덕시설로 보기도 한다.

출토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뗀석기·맷돌 등의 연모와 도토리·새뼈 등 자연유물이 있다. 토기는 우리나라 서해안지방 신석기시대 유적의 특징을 잘 나타내며 토기의 입술·몸통·바닥 부분에 각기 다른 무늬를 새겼다. 석기는 종류가 많지 않고 뗀석기가 주류를 이루며, 길고 납작한 자갈돌의 둘레를 돌아가며 떼어 만든 도끼도 있다. 반달돌칼·그물추 등 생산도구와 맷돌이 여러 점 나왔다. 맷돌은 유적에서 나온 도토리와 관련하여 음식물 조리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유적의 연대는 토기형식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에서 늦은 시기에 걸쳐 있으며, 유적에서 나온 나무숯을 이용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값은 모두 8개를 얻었는데 3,400~6,200BP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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