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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414. 11. 24, 브란덴부르크 탕거뮌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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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86. 3. 11, 프랑크푸르트암마인 |
국적 | 독일, 브란덴부르크 |
요약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군인.
(영). Albert Ⅲ Achilles.
브란덴부르크 영토는 고스란히 맏아들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아들들에게는 가문의 다른 영토를 물려주는 원칙을 세운 행정개혁가였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의 셋째 아들로 1440년 아버지가 죽은 뒤 집안의 영지인 안스바흐를, 형 요한이 죽은(1464) 뒤에는 바이로이트를 물려받았다. 1470년 또다른 형 프리드리히 2세가 물러나자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가 되었다.
그는 몇 차례나 복속시키려 했던 뉘른베르크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빈번한 반란과 상대적인 자치권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고 거의 평생 동안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의 행정정책이 군사작전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1473년 2월 24일 아킬레스의 결정(Dispositio Achillea)을 선포했는데 이것은 브란덴부르크를 통합된 전체로서 보존하며 왕조의 상속재산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브란덴부르크는 그의 맏아들에게 상속되고 당시 좀더 이익이 많은 호엔촐레른가(家) 소유의 프랑켄 영지는 그 나머지 아들들에게 돌아갔다. 이는 아직 완전한 장자상속제를 확립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었다.
그는 귀족 세력에 대항하고, 관리에게 임금을 지불하며, 관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회계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자기의 영지를 효과적으로 다스렸다. 독일 정치 문제에 있어서 그는 거의 일생 동안 합스부르크왕가의 편에 섰다. 프랑크푸르트 제국의회(1486)에서 막시밀리안 1세가 독일 왕으로 선출되도록 도왔다. 또한 화폐 및 사법 개혁을 이루었으며 독일 전체 '영방 사이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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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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