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위치 | 카자흐스탄 남동부 |
---|---|
인구 | 1,895,742명 (2020 추계) |
면적 | 339.36㎢ |
대륙 | 아시아 |
국가 | 카자흐스탄 |
요약 카자흐스탄 알마아타 주의 행정중심도시. ‘알마아타’라고도 한다. 해발 700~900m 높이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13세기에 몽골족이 파괴한 고대 거주지 알라마티 터에 1854년 러시아인들이 요새를 만들면서 도시로 발전했다. 철도가 부설된 후 도시 성장이 지속되었으며 중공업이 발달했다. 최근에는 식품공업과 경공업이 대부분이며 카자흐과학아카데미와 박물관, 오페라하우스 등이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아타 주의 행정중심도시. ‘알마아타’라고도 한다. 옛 이름은 ‘Verny’(1855~1921). 트란스알라이알라타우 산맥의 북쪽 산기슭, 해발 700~900m 높이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볼샤야 강과 말라야알마틴카 강이 이곳을 지나 평야지대로 흘러든다. 지금의 도시는 13세기에 몽골족이 파괴한 고대 거주지 알라마티 터에 1854년 러시아인들이 자일리스코예(1855년에 베르니로 개칭) 군(軍)요새를 쌓으면서 건설되었다.
카자크인, 유럽권 러시아 출신 소작농민, 상업을 하는 타타르인이 곧 부근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1867년 요새가 베르니 시로 바뀌면서 투르키스탄 지역 총독 관할인 신생 세미레치예 주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1906년 인구가 이미 2만 7,000명으로 늘어났으며, 그 가운데 2/3를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차지했다. 소련의 지배는 1918년에 확립되었다.
1921년 베르니 시는 그 지역에 사과나무가 많음을 암시하는 카자흐식 이름인 알마티를 따라 알마아타로 개칭되었다. 1929년 크질오르다에서 수도가 이전되고 1930년에 터키-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면서 빠른 성장을 계속하여 1926년에 4만 6,000명이던 인구가 1939년에는 22만 1,000명에 이르렀다. 수많은 식품·경공업 공장들이 생겨났으며, 잇달아 기계제작을 비롯한 중공업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벨라루스에서 철수한 공장들을 기반으로 발달했다.
알마아타 시는 지진과 진흙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지질학상 매우 위험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1887년과 1911년에 큰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921년에는 말라야알마틴카를 덮친 진흙사태로 대규모 파괴와 인명손실을 경험했다. 진흙사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66년 메데오 협곡 부근에 댐을 건설하면서 폭파작업을 벌여 인공 진흙사태를 유발시켰다. 이렇게 해서 건설된 높이 100m의 댐은 1973년 큰 재앙을 가져올 뻔했던 진흙사태를 막아내어 그 가치를 입증했고, 뒤에 140m 높이까지 개축되어 시의 안전성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되었다.
알마아타 시는 오늘날 시 공업 생산량의 약 1/3을 차지하는 식품업과 1/4을 차지하는 경공업을 바탕으로 한 공업 중심지로 번창하고 있다. 카자흐 S.M.키로프주립대학교(1934 설립)와 교사양성소, 경제·종합기술·농업·의료 전문학교를 비롯해 15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카자흐 과학 아카데미와 수많은 산하 연구기관들, 4개의 박물관, 러시아어·카자흐어·위구르어로 공연하는 7개의 극장, 오페라 하우스, 푸슈킨 국립도서관 등이 있다. 식물원과 여러 개의 경기장이 있으며, 상설 경제발전전시회장도 있다.
도심에서 사방으로 20㎞ 정도 뻗어 있는 알마아타 시는 넓고 구획정리가 잘 된 가로수 길과 수많은 공원 및 과수원, 또 뒤쪽으로 자리잡은 산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목조건물인 옛 러시아 정교회 대성당(1907 설립)이 아직 남아 있다. 러시아인이 주민의 2/3 이상을 차지하며, 카자흐인·우크라이나인·타타르인·위구르인·독일인 등이 소수 거주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