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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18, 잉글랜드 서퍽 리틀색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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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85. 7. 28, 서퍽 유스턴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정치가.
Baron Arlington이라고도 함(1663~72).
찰스 2세 때 국무장관(1662~74 재임)을 지냈으며 찰스 2세가 조직한 '카발' 내각(외무위원회)을 이끌면서 12년 동안 외교정책을 좌우했으며 하원에서 '궁정파'(뒤에 토리당이 됨)의 토대를 놓음으로써 영국의 정당제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내란(청교도 혁명, 1640~60)이 일어난 뒤 찰스와 함께 마드리드로 망명해 그곳에서 찰스의 대리인 역할을 했다. 왕정복고 후 국무장관이 된 그는(1663년 알링턴 남작작위를, 1672년 백작작위를 받았음) 의회가 제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1665~67)의 수행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 불신임안을 내놓았으나 직위를 유지했다. 1667년 클래런던 백작 1세가 대법관직에서 물러나자 그는 실질적인 내각 수반이 되었다.
종교(죽을 때 로마 가톨릭교도라고 고백했지만)에 대한 회의론자인 그는 로마 가톨릭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이용하여 반프랑스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1668년 윌리엄 템플 경(알링턴이 공직에 끌어들인 탁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을 중재자로 내세워 영국·네덜란드·스웨덴 사이의 프로테스탄트 3국동맹을 맺고자 협상했다. 그러나 알링턴은 국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찰스가 추진하는 친(親)프랑스·친가톨릭 정책에도 모종의 관여를 했다.
찰스의 정책은 영국과 프랑스가 비밀리에 체결한 도버 조약(1670)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조약에서 찰스는 특히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에서 루이 14세를 돕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알링턴은 도버 조약을 발효시키기 위해 힘썼다고는 하나(제2차 도버 조약은 1670년말 공개적으로 조인되었음) 네덜란드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673년 영국은 네덜란드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1674년 알링턴은 버킹엄 공작 2세의 비난을 받고 횡령과 '배임'(背任) 및 로마 가톨릭 신앙을 장려한 죄목 등으로 탄핵받았다. 공소가 취하되었는데도 그는 국무장관직을 사임했으며(1674. 9. 11) 더 안전하고 유리한 시종장직을 맡았다. 그는 제임스 2세 재위 초까지 이 자리에 있다가 죽었다. 그러나 알링턴은 제임스 2세가 즉위하기 전 그를 왕위계승권에서 제외시키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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