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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전기의 왕족·서예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이라 불렸으며, 거문고에도 능했다.
무이정사와 담담정을 짓고 문사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궁중에 소장된 서화와 자신이 모은 중국 서화가들의 작품을 연구·수련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이를 소개하는 등 당시 문화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그의 글씨는 고려말부터 유행한 조맹부의 필체를 따랐으나 이를 한국적인 필법으로 발전시켜 조선 중기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중국의 사신들로부터 "조맹부에게 배웠으나 조맹부보다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꿈에 본 광경을 당대 제일의 화가 안견(安堅)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에 발문을 쓰고, 여러 학자 문사들에게 글을 짓게 하여 큰 시화첩을 만들기도 했다.
1452년 경자자를 개주해 만든 임신자의 자모를 썼다. 1747년(영조 23)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상소로 복관되었다. 그의 글씨로는 경기도 영릉에 있다가 현재 서울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옮겨진 〈세종대왕영릉신도비 世宗大王英陵神道碑〉, 용인 〈청천부원군심온묘표 靑川府院君沈溫墓表〉, 과천 〈임영대군묘표 臨瀛大君墓表〉 등 금석문이 남아 있다. 시호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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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안평대군의 예술활동과 작품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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