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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세기 초반 40년 동안 프랑스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우익 반(反)공화주의 단체.
이 단체의 사상을 대변하던 일간지(1908. 3. 21~1944. 8. 24)의 이름이기도 하다(→ 〈악시옹 프랑세즈〉). 악시옹 프랑세즈 운동은 반의회주의·반유대주의 및 드레퓌스 사건을 둘러싼 논쟁으로 조장된 강력한 민족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19세기말에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 샤를 모라스는 군주제의 복귀를 위한 완전한 민족주의 원칙을 창안하고 이 원칙이 갈등으로 분열된 프랑스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로마 가톨릭교도, 소(小)기업가, 전문직업인의 폭넓은 지지를 받은 이 운동은, 과거로의 복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의회제 정부인 제3공화국(1870~1940)을 폭력으로 전복하자고 주장할 만큼 혁명적이었다.
악시옹 프랑세즈는 파괴전술과 청년단인 '카믈로 뒤 루아'(Camelots du Roi:왕의 행상)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우익단체 가운데 두드러진 조직이 되었다. 악시옹 프랑세즈는 민족주의 감정이 팽배했던 제1차 세계대전 뒤에 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다. 1926년 교황청의 공개비난을 받은 뒤 심한 타격을 입기도 했으나 1934년에는 공화국을 심각하게 공격할 만큼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 협력한 비시 프랑스(1940~44)와 연합함으로써 신임을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 뒤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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