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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다른 표기 언어 Akihito , 明仁 , <일>あきひと 동의어 쓰구노미야 아키히토, 継宮 明仁, 일본 제 125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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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3. 12. 23, 일본 도쿄[東京]
국적 일본
재위 1989~2019

요약 일본 125대 왕.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재위했다. 연호는 헤이세이. 왕위에 있는 동안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반전과 평화주의적인 태도를 지속했으며 한국에 대해서도 고대 왕실의 인연을 강조하는 등 친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2016년 생전 퇴위의 뜻을 밝힌 후 2019년 4월 퇴임하고 장남 나루히토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아키히토(Akihito)

ⓒ Shawnc/wikipedia | CC BY 3.0

초기 생애

일본의 125대 왕(1989~2019). 본명은 쓰구 아키히토(繼明仁). 히로히토(裕仁)와 나가코(良子)사이에서 5번째 자녀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전통적인 왕실 법도에 따라 양육되었으며 1940년 가쿠슈인(學習院)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도쿄 외곽에서 생활했으나 종전 후 가쿠슈인으로 돌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비롯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의전활동 외에 왕의 모든 통치권이 박탈되었으며 아키히토의 교육내용도 영어와 서양문화 학습 등 그 폭이 넓어졌다. 개인교사는 미국 출신 퀘이커교도인 엘리자베스 그레이 비닝이었으며 부친 히로히토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해양생물학을 전공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그는 해양생물학에 전문가적인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망둑어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헤이세이 시대 개막

1952년 성년이 됨에 따라 왕위계승자로 봉해졌으며, 7년 후 1,500년간의 왕실 전통을 깨고 평민과 결혼했다. 부인이 된 쇼다 미치코(正田美智子)는 부유한 실업가의 딸로서 1960년 두 사람 사이에 첫아들인 히로(浩)가 태어났다. 히로히토 사망 이후 1989년 1월 7일 왕이 되었으며 연호는 헤이세이(平成)로 제정되었다.

평화주의

즉위한 후의 아키히토는 전후에 제정되어 왕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도록 한 헌법에 따라 국가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 역할에 머물렀으나, 지속적으로 평화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내었다. 왕세자 시절이었던 1973년 오스트레일리아 방문시 전쟁 희생자를 추모했던 그는 1994년 이오지마를 방문했을 때에도 미일 전쟁희생자를 추모하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후 A급 전범으로 판결된 일본의 군인들이 1978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이후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한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평화주의자로서의 그의 행적은 그의 치세 기간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2004년 학교에서 일장기나 기미가요를 강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2005년 종전 60년을 맞아 사이판을 방문하고 한국인 피해자를 포함한 전쟁 희생자를 추모했으며, 2009년에는 전쟁의 역사를 후손에게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종전 70년을 맞아 팔라우를 방문해 전쟁 희생자를 추모했으며, 그해 8월 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는 과거사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4월 퇴임을 앞두고, 그의 치세 기간 동안 전쟁이 없었다는 데 큰 안도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태도

아키히토는 또한 한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과의 접견에서 자신의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음을 밝힌 데 이어, 2001년 68세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는 간무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쓰여 있어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고 발언하여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강조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시에는 한때 일본이 한반도에 지대한 고통을 주었다는 깊은 슬픔이 있다고 발언하여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끼친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가족

그는 아내 미치코와의 사이에 아들 나루히토, 후미히토, 딸 사야코 등 2남 1녀를 낳았다. 나루히토는 1993년 오와다 마사코와 결혼하여 딸 아이코를 낳았고, 후미히토는 1990년 결혼하여 딸 마코, 카코, 아들 히사히토를 낳았다. 사야코는 2005년 평민인 쿠로다 요시키와 결혼하여 평민이 되었다. 남자 직계 후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본왕실전범에 따라, 아키히토의 뒤를 이를 왕위 계승은 나루히토, 후미히토, 히사히토 순으로 정리되었다.

퇴위

2016년 8월 아키히토는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스스로 퇴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의 왕이 생전에 퇴위하는 것은 1817년 고카쿠 왕 이후 202년 만의 일로, 일본 정부는 왕의 뜻에 따라 아키히토 왕의 경우에 한하여 생전 퇴위를 인정하는 왕실전범 특례법을 제정했으며, 이에 따라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가 왕위를 잇게 되었다. 2019년 4월 30일 오후 5시 아키히토는 영빈관 마쓰노마에서 퇴위식을 가지면서 공식적으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나루히토 왕은 다음날인 5월 1일 즉위했으며, 일본 연호는 2019년 5월 1일 0시를 기해 새 일왕의 연호인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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