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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이집트 중부 아시우트 주, 나일 강 서쪽 연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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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489,000명 (2024년 추계) |
면적 | 26.6㎢ |
언어 | 아랍어 |
대륙 | 아프리카 |
국가 | 이집트 |
요약 이집트 아시우트 주의 주도이며 상이집트 지방 최대의 도시. 카이로와 아스완의 중간 지점으로 나일 강 서안에 있다. 테베의 영화에 도전할 만큼 번성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유명한 다르브 알아르바인을 포함하여 동서의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로들의 종착지여서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중세기 이슬람 제국 지배하에서도 상업적 중요성을 계속 유지했으며, 고급직물의 원산지로 잘 알려졌다. 고대 전통을 이어 지금도 은박의 수직 숄을 만드는 몇 안 되는 곳의 하나로 남아 있으며, 고급도자기·상감목세공품·양탄자 등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카이로와 아스완의 중간 지점으로 나일 강 서안에 있다. 나일 강 유역 관개지는 이곳에서 너비가 약 20㎞에 달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시우트로 알려진 이 도시는 재칼의 머리 모양을 한 웨프와웨트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고, 중왕국(BC 1938~1600경)에는 상이집트 제17주의 주도였다.
테베의 영화(榮華)에 도전할 만큼 번성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유명한 다르브 알아르바인을 포함하여 동서의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로들의 종착지여서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재칼의 머리를 한 신을 숭배한다고 해서 리코폴리스('늑대의 도시')라 불리기도 했다. 이 도시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노스(205경~269/270)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중세기 이슬람 제국 지배하에서도 아시우트는 상업적 중요성을 계속 유지했으며, 고급직물의 원산지로 잘 알려졌다. 그 직물은 상등품인 과일 및 곡물류와 함께 시 근교에서 생산되어 다르푸르를 비롯해 수단의 여러 지역들로 수출되었다. 귀로하는 대상들이 노예·상아·염료 등을 들여왔다. 아시우트는 고대 전통을 이어 지금도 은박의 수직 숄을 만드는 몇 안 되는 곳의 하나로 남아 있으며, 고급도자기·상감목세공품·양탄자 등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그밖에 현대적인 직물공장들과 화학비료공장이 있다.
1902년 아시우트 시와 그 하항인 알함라 바로 북쪽에 나일 강을 가로지르는 832m 길이의 석회암 둑인 아시우트 댐이 건설되었다. 이 댐에 의해 물이 유입되는 바흐르유수프 운하(옛 이름은 이브라히미야 운하)는 나일 강과 나란히 북쪽으로 약 320㎞를 흐르고 이집트 중부의 많은 지역에 관개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그 서쪽 지류는 알파이윰 오아시스로 흐른다. 댐은 1980년대에 개량되었고 수력발전소가 추가로 건설되었다.
아시우트의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종합대학교(1957 개교)와 사범대학이 각각 하나씩 있다. 콥트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로 꼽히는 아시우트 주교구는 카이로에 소재하는 대주교의 관할하에 있다. 시의 남서쪽에 솟아 있는 석회암 구릉에 제12왕조(BC 1938~1756)의 암묘(巖墓)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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