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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유명한 성지(聖地)이며 고대 이집트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
(이집). Abdu. 콥트어로는 Ebot.
지금의 알아라바트 알마트푸나이다.
알발리아나 근처의 나일 강 서쪽 저지대 사막에 위치하며 이집트 초기 두 왕조의 왕실 공동묘지로서 나중에는 오시리스 신(神) 숭배를 위한 순례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의 역사는 바로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최초의 이집트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말 에밀 클레망 아멜리노와 플린더스 피트리 경이 이곳을 발굴해 일련의 묘 구덩이와 비석을 발견했다.
이 비석에는 이 무덤들이 이집트 초기 두 왕조의 왕들의 것이라고 분명히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카라에서 똑같은 왕들의 이름이 새겨진 부장품들이 매장되어 있는 석실묘가 발견되자 곧 아비도스에 있는 무덤에 새겨진 이름대로 이집트 왕들이 묻힌 곳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사카라 묘지의 규모가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부장품이나 장식도 풍부해 많은 학자들은 이곳이 초기 왕들의 진짜 묘지이며, 일찍이 아케익기 때부터 아비도스에 가짜 무덤과 비석을 세우는 관습이 있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공동묘지 구역 북서쪽 끝에 벽돌 담이 당당하게 둘러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제2왕조의 일부 파라오들이 실제로 이곳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 이 벽돌담 가운데 어떤 것은 포함하고 있는 면적이 0.8㏊에 이른다.
이 도시의 수호신은 고왕국 때 켄티아멘티우라 불리던 자칼 신이었다. 제5왕조 때 자칼 신을 숭배하던 전통은 차츰차츰 오시리스 신 숭배에 흡수되고, 이 도시는 곧 오시리스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오시리스의 공인된 무덤이 있는 아비도스는 그 무덤에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묻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독실한 이집트인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곳에 묻힐 만한 비용이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서는 비문을 세워 죽은 사람의 이름과 호칭 및 신에게 바치는 기도문을 새겼다. 이곳 공동묘지에서는 이런 비석들이 수천 개 있다.
파라오들은 점차 아비도스가 아니라 그들이 살던 도시 근처에 묻히게 되었지만 아비도스에서 신격화된 오시리스 왕에 대한 숭배를 장려했으며, 그곳에 있는 오시리스의 사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확장시키는 데 특별히 신경을 썼다. 수세기에 걸쳐 페피 1세, 아모세 1세, 투트모세 3세, 람세스 3세, 아모스 2세 등은 오시리스의 사원을 잇달아 재건·증축했다.
어떤 파라오들은 이곳에 기념비나 장제전(葬祭殿)을 세웠으며 그중 세티 1세의 사원이 가장 아름답다. 이 사원은 설계가 독특해 신전이 7개나 되며 2개의 널찍한 다주식(多柱式) 홀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신전은 파라오와 이집트의 주신(主神)들에게 바쳐졌다. 다른 방으로 통하는 긴 회랑에는 세티 왕과 아들 람세스가 메네스에서 시작되는 76명의 선왕(先王)들의 카르토시(cartouche:고대 이집트 왕의 이름을 두른 타원형 윤곽)에 봉헌하는 모습을 나타낸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것이 곧 아비도스의 왕목록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사원의 벽을 장식하는 부조들은 특히 섬세하며 아름답다. 세티 1세의 사원 뒤 불과 8m 떨어진 곳에 오시레이온이라고 알려진 빼어난 건축물이 하나 있는데 아마 세티의 기념비인 듯하다. 이 기이한 기념물은 지하 납골소로, 중앙에서는 수로(水路)로 둘러싸인 10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플랫폼이 있다. 아비도스의 여러 사원 주변과 사원들 사이의 공간은 선사시대로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는 초기 이집트 역사의 매 시대마다 방대한 공동묘지 단지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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