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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6. 8. 10, 미국 로드아일랜드 이스트프로비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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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8. 4. 19, 볼티모어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신문편집자·출판업자.
2명의 다른 투자가와 함께 필라델피아의 〈퍼블릭 레저 Public Ledger〉, 볼티모어의 〈선 Sun〉지를 창간했다.
아벨은 14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서인도제도 상품들을 취급하는 상점의 점원이 되었다. 그는 인쇄업자가 되기를 희망하여 1822년 〈프로비던스 패트리어트 Providence Patriot〉에 입사하여 견습공으로 일했다. 그후 보스턴에 자신의 인쇄소를 설립했고 이어 뉴욕에도 인쇄소를 차렸다. 그는 필라델피아가 새로운 1페니짜리 신문에 적합한 시장이라고 판단하고, 1836년 동업자 윌리엄 M.스웨인, 아자리아 H.시몬스와 필라델피아의 〈퍼블릭 레저〉를 창간했다.
2년 만에 그 신문은 경쟁지 필라델피아의 〈트랜스크립트 Transcript〉를 흡수합병했다. 한편 아벨과 그의 동업자들은 1837년에 볼티모어의 〈선〉을 창간했고 1년 후에 1만 2,000명의 정기구독자를 갖게 되었다. 두 신문 모두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필라델피아의 〈퍼블릭 레저〉가 스캔들과 감각적인 기사들을 자유롭게 다루었던 반면 볼티모어 〈선〉은 그렇지 않았다.
볼티모어 〈선〉의 경영자로서 아벨은 뉴올리언스의 〈데일리 피키윤 Daily Picayune〉의 발행자와 손잡고 볼티모어와 뉴올리언스를 연결하는 중계역마체제인 '포니 익스프레스'를 설립하여 뉴스의 전송을 빠르게 했다.
'포니 익스프레스'는 멕시코 베라크루스의 전투에서 미군이 승리한 소식을 미국 정부가 알기도 전에 볼티모어에 전달하여 역사적인 뉴스 특종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아벨은 제임스 K.포크 대통령에게 승리소식을 전보로 알렸다. 그는 사무엘 F.B.모스에게 전신기술을 발전시키도록 고무시켰고, 그것을 가장 열성적으로 애용했다.
기술적 진보를 강조하는 혁신가였던 아벨은 뉴스 전송을 빠르게 하기 위해 전보와 전서구를 이용했다. 그의 경영하에 볼티모어 〈선〉은 윤전기를 설치한 최초의 미국 신문이 되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발행부수가 약 3만 부에 이르렀다. 아벨은 죽을 때까지 볼티모어 〈선〉을 경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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